2020년 4월 9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시편 22편 1절에서 6절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는 벌레요”

시편 22편은 다윗이 기록한 시로서 현재 자기의 고통 받는 상태를 한탄하며 쓴 비유의 시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시는 훗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현재 자기의 상태를 “나는 벌레요…”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최고로 비하시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벌레요”하는 자리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나는 벌레요!” 이 말은 예수님 자신의 비하의 극치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나는 부활과 생명이다!” “나는 선한목자다!” 등 선포하실 때 그 “나는” 원어로 “에고우 에이미” 그 “나는”은 예수님의 신성을,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 말씀을 하셨던 구주 예수님이, “나는 벌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시는 나의 예수님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벌레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벌레가 되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22절부터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에 계속해서 주님께 찬송하고 헌신을 다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서 제일 많이 부른 찬송을 뽑으라고 하면 새 찬송가 305장에 있는,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일 겁니다.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거의 매 주 한 번씩은 그 찬송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 찬송의 작사자는 존 뉴턴 목사님입니다. 그는 한 때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들을 짐승처럼 잡아와서 팔아넘긴 악덕상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목사가 되어 평생 예수님만 전하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그 가운데 작사한 찬송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입니다. 그는 그 가사 내용대로 평생을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존뉴턴이 고령의 나이가 되어 말한 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치매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늘 습관처럼 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린다 할지라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 데, 한 가지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기 때문에 나는 내 목숨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이 우리 대신 버림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사 자기의 아들을 벌레의 자리에서 야생짐승 같은 죄인들의 조롱과 모욕과 고통을 다 받게 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나의 주님을 영원히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주님께 헌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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