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17절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겸손일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상대방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열수 있는 힘은 겸손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단체 등등 어떤 공동체이든지 서로 겸손하게 대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자녀들에게도 귀한 겸손의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 인간인 성도 된 우리의 겸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의 놀라운 비밀을 한 성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에서 첫 번째는 겸손이고, 두 번째도 겸손이고, 세 번째 역시 겸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존귀하게 사용하시고 축복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겸손의 대표적인 분이신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세례요한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 주는 자로 여기고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저 물로 세례를 줄 뿐이지만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심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불로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덧붙여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초라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요한은 자신을 주목하지 말고, 뒤에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요한은 헤롯왕을 위시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과 인기를 받아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열정과 관심뿐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오직 모든 칭찬과 인정과 영광을 예수님께만 주목시키고 예수님만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세례요한처럼 겸손히 예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성경이 말하듯이 먼지와 같고 호흡이 코에 있는 연약하기 그지 없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존재에게 영광과 높임과 섬김을 받아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리할진대 만약 티끌과 같은 인간이 스스로를 높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단강으로 나오셨습니다.

사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며 죄씻음의 필요를 갖고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세례를 받을 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간 인물 중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고 회개할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지금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로 나오시고 있습니다. 이때 세례요한이 너무 당황합니다. 그래서 한사코 말립니다. “제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어찌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땅에 보내심을 받은 목적에 합당하게 사는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게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그 의를 위하여 하늘 최고의 보좌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그것도 종의 형체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수 있는 분이 죄인처럼 죄인인 세례요한에게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겸손하게 우리의 의가 아닌 이땅에 보내심을 받고 맡겨진 삶을 살게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 교우 여러분! 사실 겸손의 문제 하나만 해결되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 내가 겸손해 지면 다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겸손은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그리고 겸손의 대가이신 예수님을 제일 잘 닮아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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