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마가복음 8장 31절에서 38절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죄와 사망과 지옥의 주관자인 마귀를 따라간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길과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아침은 본문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된다고 예수님께 항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33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닌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생각했던 “사람의 일”이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로
예수님이 이 땅위에서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덕에 자기는 예수님 옆에서 한 자리 꿰차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간적인 영광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잘못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실 내 마음 속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내 영광을 더 추구합니다. 나의 명예에 더 애착을 갖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도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묵묵히 예수님을 따라가기보다 사람의 일을 더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듭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못마땅하다고, 인정 못 받는다고 주저앉습니다. 뒤 돌아섭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나를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 28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보내신 이 곧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타내는 일이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오직 예수님만을 나타내야 합니다. 직장에서, 사업에서 일을 할 때도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취미활동을 해도, 테니스를 쳐도, 골프를 쳐도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어느 누구와의 힘든 관계 속에서도 사랑과 용서와 화평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34절에서 예수님께선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에 대부분이 바로“ 나”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해서, 내가 교만해서, 내가 욕심이 많아서, 내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힘들게 하는 것도 어느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인 것입니다. 인류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근본적인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으면 자기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이기심과 교만 때문에 따먹은 것이고 우리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물러 받은 바로 자기만을 아는 이기심이 우리의 죄성 안에, 옛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기를 부인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럼 어떻게 늘 이기적이고 교만한자기를 숭배하려고 하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하다면 저절로 해결 됩니다. 본문의 29절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예수님이 아주 기뻐하신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했어요? “주”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만약 이 고백이 진짜라면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값으로 나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이 것이 확실하다면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의 철학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내가 주인이 되라고 속삭입니다. 사탄도 내가 주인이 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의 고백은,“예수님이 주인이시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34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이“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시키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좇으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죽을 정도롤 몹시 고통스러우셨을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왜냐면 십자가를 지는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항상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상반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과 함께 고난 받아야 할 것을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예수님과 천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 땅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경탄하는
사람은 많은데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 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은 것이 보통 축복과 영광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은 후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얻게 될 영광과 상급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7장 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미국 어느 교회의 본당 안에는 큰 십자가가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강대상 뒤로 십자가가 똑 바로 하나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십자가가 걸려있는데 바로 출구 곧 밖으로 나가는 쪽에 큰 십자가를 두었는데 똑바로 세워두지 않고 나가는 문 쪽으로 기울게 세웠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예배당에 들어와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제 내가 이 예배당을 나갈 때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나타내고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은혜이고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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