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0일 새벽기도

본문 말씀: 사도행전 15장 1절에서 1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차별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초대교회는 계속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바른 신앙고백과, 조직과, 질서와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모든 교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소위 오늘 날의 교단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 날 초대 교회 교단 회의의 주제(1절)는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데 바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기록 된대로 그 일로 바울 및 바나바와 베드로와 다른 형제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교회들은 항상 다툼의 요소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 땅의 교회 중에 그런 요소들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교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교회의 문제가 없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에 잘 대응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초대교회는 교회의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아주 적절하게 잘 다룬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본문의 5절 말씀을 보시면,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여기서 바리새파 중에 예수를 믿고 같은 신자가 된 사람들인데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강한 주장으로 말합니다. “아무리 이방인이이라도 우리처럼 예수님을 믿고 같은 형제가, 그리스도인 되었다고 해도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오!” 그러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는데 한 때 바리새파였다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옛날에 율법주위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도 지켜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할례도 마땅히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잘 못된 점을 발견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차별 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바리새파였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우월성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우월성이 공동체에, 교회에 갈등을 조성하게 됩니다. 오늘 날도 여러 가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은사에 대한 우월성, 교회 경력에 대한 우월성, 여러 배경에 대한 우월성, 직분에 대한 우월성 등등은 공동체의, 교제의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보다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서로를 섬기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바리세파는 얼마나 자기들의 우월함을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런 바리새파적인 주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은혜를 강조하지 않고 율법을 강조합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관대하지 못하고, 율법으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나 교회가 율법보다 은혜를 더 적용했다면 얼마나 많은 갈등과 다툼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율법으로 접근하셨다면 여기 있는 저부터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선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자기의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나도 너희를 사랑으로, 은혜로 대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으로, 은혜로 대하라! 율법은 우리를 절대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은혜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강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예루살렘 회의에서 비본질인 할례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할례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변론이 일어납니다. 잘못하다가 파가 갈릴 수 있는 위기입니다. 어리석게도 기독교 역사를 보면 파가 갈라지고, 나눠졌을 때 많은 경우가 비본질의 이슈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이런 이슈들이었습니다.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 서있을 수 있느냐? 또 성직자의 가운 길이가 어디까지 내려와야 되느냐? 라는 비 본질 적인 이슈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날도 마찬가지 일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가정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다툼들을 볼 때 얼마나 사소한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이고, 유치한 것인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본질적인 것에 쏟아 부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을 거의 대부분이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이 상하고, 시험도 받고. 시간과 에너지를 뺏길 때가 많습니다,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에 갈등과 변론과 다툼이 일어나는 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바리새파 및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예수 믿기 전 옛날의 율법의식과 사고방식과 고종관념 등등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들도 우리처럼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교회가 위기에 접하게 됩니다. 자칫하면 구원 플러스 율법 및 할례라는 이단적인, 잘못된 교리가 형성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분열될 수 있는 위기인 것입니다. 이때 교회의 지도자요 사도인 베드로가 일어나서 중재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 본문의 8절 말씀에서 11절 말씀까지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놀라운, 아름다운, 중재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먼저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을 얻게 된 것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도 아니고 할례를 받아서도 바로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성령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 것이고, 믿게 하신 것이고, 거듭나게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도 다 동일하게, 그렇게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행함이나, 의식이나, 그 어떤 우월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의 9절 말씀으로 보니까,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바리새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이고 모세의 율법을 중요시 했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 이방인들을 차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유대인과 이방인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한 믿음, 한 성령, 한 세례로 구원받게 하시고 한 자녀로, 형제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선 동일하게 독생자 예수님을 여러분 모두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부모는 자녀 중 누구누구 차별할 수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슴 아파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이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들이 비 본질을 가지고, 세상적인 자기들의 우월성 등등을 가지고 형제를 차별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가 전한 말씀의 내용에서 8절에서는,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입니다. 세 번을 반복하는데 다양하게 표현하는 내용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들이 우리와 같이”입니다. 그러니까 연약한 인간은 갈등을 만들어 내고 하나님은 화합을 만들어 내십니다. 연약한 인간은 분열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은 일치와 연합을 만들어 내십니다. 연약한 인간은 경쟁과 다툼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은 평화와 행복을 만들어내십니다. 연약한 인간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어내시고 수용해내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의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동일하게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은혜로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품어줘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은혜로 하나님의 열정, 하나님의 가슴, 하나님의 기쁨 곧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