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마태복음 28장 16절에서 20절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목적 바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승리를 가져오신 다음에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전의 내용입니다.

먼저 본문의 16절 말씀을 보시면 “열한 제자가” 예, 열한 제자입니다. 처음에는 열두제자였는데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나서 자신이 무죄한 사람을 팔았다는 죄책감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열한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본문 말씀에서 열한 제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그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가롯 유다가 자기가 저지른 일이 그렇게 무서운 죄책감을 가져올 줄을 알았다면, 그렇게 크게 후회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예수님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 불쌍한 영혼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임종 시에 많은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임종 시에 하는 후회들 중 가장 큰 공통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는 후회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이란 가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 일이 너무 후회가 되고 그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임종 시에 후회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예수 믿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임종 시에는 그동안 자기가 의지해 왔던 인맥이나, 가족이나, 돈이나 명예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정말 죽음 이후의 영생을 좌우하시는 예수님밖에 없고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란 사실 또한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가장 큰 후회가 있다면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위해 더 충성하지 못한 후회뿐입니다. 비록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에 대한 후회는 없겠지만 예수님께 더 충성할 수 있는, 더 쓰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기회들을 낭비한 후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예수님을 은 삽십냥에 팔아넘겨 다른 제자들처럼 마지막순간까지 영광되게 쓰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을 위해 더 쓰임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충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에, 다른 일에 밀려서 주의 일을 소홀히 하다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면 주님 앞에 어떻게 서게 될 것인가에 대한 후회가 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16절에서 가롯 유다가 빠진, “열한 제자”라는 말 속에서 가롯 유다의 불행한 말로를 기억하며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받습니다.

이제 본문의 1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여기서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산은 감람산인데 그럼 예수님께서 언제 제자들에게 감람산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지시하신 것입니다. 사실 열한 제자들도 잘 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의리 없이 다 도망가 버린 비겁쟁이들이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요한 빼놓고 다른 제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열한 제자들이 가롯 유다보다 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정도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유다 같은 나”라는 찬양이 있은데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부활하신 후에 유다보다 낫지 못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간 것에 낯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선 한마디의 책망도 없으시고 그들을 다시 제자로 사도로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하고 버리고 도망간 정말 대책 없고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셔서 다시 제자의, 사도의, 사명의 자리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오늘 날의 열 한 제자들은 없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으셨습니까? 지금.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주님께 쓰임 받고 계십니까? 다 우리를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의 16절 말씀에서 주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한 열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감람산에 이릅니다. 바로 그 곳에서 곧 승천하실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곧바로 열한 제자는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이제 본문의 18절 말씀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이 지시한대로 감람산에 모인 열한 제자들에게 내리시는 예수님의 위대한 지상명령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먼저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위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으로서 우주만물의 권세를 가지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본문 말씀에서 가지고 계신다는 권세는 새 창조에 대한 권세입니다. 그러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구원의 권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새 창조 즉 구원을 받게 되는 권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권세는 천지창조에 대한 권세보다 더 위대한 권세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의 권세로 천지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은 죄인을 새 창조 곧 구원하시기 위해선 하늘 보좌위에서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하고 위대한 권세입니까? 이제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세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이 위대한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의 지상명령 곧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땅 끝까지 가서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이 지상명령에서 제외 된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 지상명령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선교에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천국에서는 할 수 없는 전도와 선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위대한 약속을 보게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마 그리스도인들과 가운데 이 약속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해주신다는 것보다 큰 위로와 소망과 평안과 담대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위대한 약속을 오늘 본문 말씀의 문맥을 통해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러분에게 사명을 맡겨주셨고 그리고 여러분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주의 일을 등한시 하고 있는 가운데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해주시기만을 원한다면 참 주님 앞에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가지고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일할 때 때로는 힘든 일도 생기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듣고, 낙심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생겨도 나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신다는 약속을 믿기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고,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제일 먼저 가서 일생토록 그 암흑대륙을 탐험하며 처음으로 흑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리빙스턴은 백인으로 혼자 흑인.사이에 가서 개척 전도를 할 때에 위험한 일을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언제든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같이 있으리라.” 리빙스턴은 이 성경 구절을 기억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말 하실 수 없어. 그 분은 참 말만 하시는 분이야!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때까지 나와 같이 있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나는 믿어!” 라는 믿음을 가지고 리빙스턴은 미쁘신 주님을 의지하고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든지, 어떤 급한 일을 당하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주를 의지하고 담대히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천사장 가브리엘이 예수님을 만나 여쭈어 보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나 제한된 지역에서 되어진 일이라 만백성을 구원하기에 미흡한 것 같은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이루었다’하셨으니, 정말 다 이룬 것이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사장에게 다 이루었다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래도 가브리엘 천사는 걱정스러워서, “주님! 천사들을 보내어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잘 부탁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 등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통치 않아 믿을 수 없으니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재촉을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신 있다. 나는 그들이 잘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다른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비겁했고 연약한 열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자기들 같은 죄인들을 일꾼 삼아주신 것에 감사하여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선 여러분이 주님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실 것을 그 누구보다도 인정하시고 믿어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령님을 여러분에게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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