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말씀 2010년 1월 12-15일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에베소서 1: 15-19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면 전에 알지 못했던 것, 혹은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알아 누리기 원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 즉, 세상적 보다는 영적인 것에 가치를 더 둔다.

바울은 우리가 알게 되기를 원했다.

15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절,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예수 안에 있는 나를 알아야겠고, 예수 안의 축복을 알게 해 주시라고 기도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하늘의 신령한 축복, 영적인 축복을 알 때, 더 가치 있게 감사하며 살 수 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 너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시라고 기도한다.
현대인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소홀하다. 세상 일에 분주해서, 하나님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더 갖다 보니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적어지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축복을 잃어간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복된 자 인지 알 수 있다.
헬라어로 기록된 본문의 ‘알다’라는 단어는 아주 친밀한, 생동감 있게 신비한 체험 속에서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부부가 서로 관계를 통해서 안다고 하는 의미로 체험적인 관계,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알고 계시다는 의미이다. 체험 속에서 알아가는 관계. 창조주만으로 알기 시작한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가까운지 알아가니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목자이셨고, 신랑이신 하나님이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이시고, 왕이기도 하시고, 아버지 같은 하나님으로 점점 더 알아갈 때에 진짜 축복이다. 사람은 알아갈수록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정으로 덮어간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알아갈수록 실망된 적이 없고, 더 사랑하고, 더 경외하고, 더 예배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이라면 더 알아가야 한다.
이제는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한 해의 열망과 소망이 되어야 한다. 힘이고 축복이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실까에 만 집중되지 않았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이심에는 관심이 없지 않았는가? 자녀들이 부모자체를 인정해주고, 염려해 주고, 관심 가져 주면 그들이 철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이시면 됩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고백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잘 자라고 있구나. 라고 칭찬하지 않겠는가? 인생을 마감하는 마지막에 투자할 만한 것은 하나님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알고 싶어하듯이.

18절,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부르심,
1.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흑암 속에서 신음하던 멸망의 길로 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다. 부르심, 원어의 의미는 각 사람, one by one, 개인적으로 한 사람씩 불렀다는 의미이다. 함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알아 불러 구원하셨다. 너는 내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사명을 주셨고, 사명을 위해 부르셨다. 마지막이 되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사명에 집중하게 된다. 부르심에 부합한 삶을 살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누구든지 이제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내세를 생각하게 된다. 사후에는 기업이 내게 준비되어 있다. 내 몸이 예수님처럼 부활되어 더 이상 고통, 눈물, 사망이 없는 영광이 풍성한 몸으로 부활한다. 우리의 몸은 점점 쇠퇴해 가지만 그게 끝이 아니고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할 것이니 장례식에서도 소망으로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소망하니 이 땅에서 충실하게 살 수 있다. 여행여정이 아무리 피곤해도 돌아갈 집이 있어서 보람과 감사가 있고, 그 힘으로 여행을 끝낼 수 있다. 갈 소망이 있으면 나그네 삶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본향으로 가는 길을 찬양하며 갈 수 있다.

19절,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 안에 있는 능력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해?” 라며 자신을 과소평가한다. 내가 가진 위력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지극히 크신 위력이 역사하신다. 이 지극히 크심을 잊게 만드는 것이 마귀이다. 성령님이 강림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겁쟁이였다. 성령님이 임하시고 나니까 그 겁쟁이들이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 비겁하기 그지없던 제자들을 바꾸신 성령님의 힘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알게 되기를 원했다.
연결이 느슨해져 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를 내 힘으로 발동 걸려고 하듯이 하나님의 능력에 연결되지 않은 채로 내 힘으로만 신앙생활을 해오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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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수요일

인생은 짧다. 헛되이 낭비하면 죄다. 귀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열심을 내야 한다. 열정 없이는 어떠한 작품도 기대할 수 없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보다 열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로마서 12: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는 기독교 교리의 총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 성령의 인치심, 하늘 섭리, 그리스도의 권세 등을 총망라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12장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라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 강요나 의무가 아니라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엄청나서 열심을 품고 섬기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진짜 열심을 품고 섬긴 사람이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진짜 열심히 섬기다가 부르심을 받았다. 죄인의 괴수인 나를 불렀다는 생각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권, compel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손양호 목사는 “오늘 하루만이 내 시간인 줄 아는 사람이 순교한다. 하루, 한 시간이 귀한 사람은 주님 뜻에 맞춰 산다. 이것이 순교이다. 누구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 열심을 가져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이사야 9장 7절 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라고 하신 열심의 대가이신 하나님께 배우자.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시려고 인간이 되기까지 열심히 하셨다.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열심히 하셨다. 섬김의 열심, 십자가 죽음의 열심. 지금도 그 열심을 가지고 일하신다. 주님을 위해 나도 열심을 낸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헬라어로 열심은 ‘가슴에 불을 안고’ 라는 뜻이다.
호세아 11장 8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 하나님의 열심은 이렇게 불탄다. 게으름의 가장 좋은 처방은 내 안의 불을 발견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장 7절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귀중한 시간을 불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예배, 섬기는 일, 무엇이든 불꽃처럼 청지기, 사역자가 되기 원하신다. 열심을 낸다고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부질 없는 일, 지나가는 일 말고, 가치 있고, 영원한 일에 열심을 내라. 가장 영원한 일인 주를 섬기라. 평생 후회하지 않는 열심의 자산이다. 마지막에는 어찌되었든지 후회를 많이 하기 마련이다.

에머슨은 “역사에서 큰 운동은 열심이 가져다 준 큰 승리”라고 말했다. 존 웨슬레는 “기독교는 열심의 종교이다. 내 신학도 열심의 신학이고, 열심이 없으면 생명이 없어 보인다. 성경 속에서 쓰임 받은 사람은 모두 열심의 사람이었다.” 라고 말했다.
요한 계시록 3장 15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마틴 루터 킹은 “제가 세상에 조금 알려 졌다고 위인도 아닙니다. 저도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최선을 다해서 충성했다고 칭찬 듣는다면 족합니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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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목요일
누가복음 17장 11-19절

어느 순간에 마지막을 만날 지 아무도 모른다. 배은망덕하지 말고 결초보은하는 삶을 살라.

1. 남의 은혜를 입었는데도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것이 배은망덕이다.
고침 받은 환자 10명 중에 9명은 감사하지 못했다.
배은망덕의 사람이라면 마지막 순간에 가슴을 계속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한 호두나무가 어서 자라서 열매를 맺어 사람들에게 맛있는 호두를 주어 섬기기를 소원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드디어 나무는 열매를 맺었고,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다 익을 때가 되니 사람들이 돌멩이를 나무에 던져서 열매를 따려고 했다. 호두나무는 애써서 열매를 맺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섬기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감사할 줄을 몰랐다.’
9명은 감사할 줄을 몰랐다. 잊지 않고 감사를 표현하십니까? 아니면 당연한 일로 여기고 기억조차 하지 않지는 않습니까?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2. 결초보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은혜를 갚겠다는 의지를 결초보은이라고 한다. 은혜에 감사하러 돌아온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는 선택 받은 유대인이었지만 제대로 취급 받지 못한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감사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감사를 표현하라.

a. 매은망덕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b.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았으니 나도 당연히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c.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것에 대해 평생 감사하라.
d. 내 삶으로 영광 돌리는 자리에 와서 결초보은하는 인생을 살라.
e. 인간관계가운데서 누구에게라도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며 동고동락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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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금요일

요한복음 1장 1-8절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라. 목적은 부르심, 소명, 사명, vision이라고 할 수 있다.
릭 워렌은 “인생의 존재 목적, 교회의 존재 이유를 알아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목적을 발견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관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 의미, 내용, 능력이 무엇인지 도무지 관심 없이 살다가 구원 받고 나니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 현실로 마음이 간다. 어떻게 하면 땅에서 실천하며 살까를 생각하며 산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 없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욥은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고 있었다. 1장 21절에서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 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17절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고백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고린도 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미켈란젤로의 스승 보톨도지오바니는 14살난 미켈란젤로에게 위대한 조각가는 재능과 기술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스승은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술집과 성당으로 데려가서 훌륭한 조각품들을 보여 준다. 재능, 기술적으로 모두 똑같이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술집에 전시된 조각품은 취객들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성당 앞에 전시된 조각품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 가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내 인생을 사용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루어 주신 주님께 감사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마지막 순간을 맞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한복음 1장 23절에서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great commission,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인생의 사명이다.
28장 18-20절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부르는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 인생의 소명, 목적, 사명을 매일 이루며 성취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적을 이루는 삶은
1. 세상이 줄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6절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2.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 인생의 존재 목적이다.
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4. 지식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알 지 못해서 영접하지 못했다.
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5. 열정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열정적으로 감당하셨다.
6. 절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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