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마태복음 20장

“지난번엔 네가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살께.” 우리는 이런말을 자주하고 듣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좋은 마음이지요. 하지만 상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분나빠합니다.무엇을 받으면 빚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갚지않으면 매너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구요.
이런사고가 팽배해서일까요? 무엇을 베풀면 무엇으로든 보답이 있기를 바라게됩니다. 최소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라도 듣고 싶어집니다.

아무런 인정도 받지못하고, 고맙다는 말도 듣지못한채 다른사람을 위해 계속해서 수고한다는것은 참 어려운일 같아요.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해야한다면… 그것도 기쁜마음으로 기꺼이…

마태복음 20: 1-16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천국을, 품군을 찾으러나간 포도원 농장주인에 비교하십니다.
하루종일 수고한 일군과 해지기 바로전에 들어온 일군 모두, 한 데나리온씩의 일당을 받습니다.나중에 들어온 일군들이 한 데나리온 씩을 받는 것을 본, 아침 일찍 들어온 일군들은 비록 자신이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하고 들어왔지만 한일이 많았던것을 생각하며  더 받을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역시 한 데나리온의 일당이 주어졌고 그들은 불만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에게 약속된 일당은 한 데나리온이었고 그것을 받는것이 무엇이 잘못ㄷㅚㅆ느냐며 자신이 다른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며 책망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처럼 불공평한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더위아래서 수고했습니다. 마땅히 적게 일한자들보다 더 많은 삯을 받아야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눈으로보면 공평하다고 하십니다.그들은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값을, 즉, 받기로 되어있던 자신의 몫을 모두 받았기때문입니다.

주인이 모두에게 삯으로 한 데나리온씩을 지불한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한 데나리온이면 충분했기 때문이였다고 생각됩니다.
직업이 없어 시장에서 서성이던 그들…노숙자와도 같던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데려와서 일한 분량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준것을 보면, 애당초 주인은 그들의 노동력이 그다지 필요했던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위해 데려간것 같아요. 그 한 데나리온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제 생각에는 구원같아요. 영원한 생명…우리에게 예비하신 유업…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고, 이러한 구원의 은혜는 아버지의 초청에 응한 모든 자들에게 조건없이, 공평하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니까요.

더 많이 일한 그들이 바랬던 보수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구원 즉, 아버지와의 관계회복 이상으로 더 얻고자했던것…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것…

그들이 포도원에서 일한 하루를 고생으로만 여긴것을 보면, 그들의 마음엔 감사가 없었음을 알수있습니다. 보수만을 바라고 아무 기쁨도, 감사의 마음도 없이 기계처럼 일만했기에 불만이 가득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은 노숙자같은 자들이었습니다. 바깥 거리에서 춥고 배고프지 않았었을까요? 아무 희망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결국, 그렇게 하루종일 기회가 없어서 좀더 일찍 포도원으로 일하러올수 없었던 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하루종일 일하느라 고생한 자신의 수고만 생각하고 비교하며 욕심만을 내고 있던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했으니까 당연히 이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지…라는 생각은 주님의 마음에서 오는 생각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더 이상, 바깥 세상에서 서성이지않고,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할수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자주 잊고 있음을 반성합니다.

누구를 위해선가 무엇을 했다면 아버지의 포도원에서 일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답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지금도 나를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예수님이심을 잊지 않기로 다시한번 다짐해봅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마태 20: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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