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6일 새벽 예배

찬송: 새 385장 (통 435장) “못 박혀 죽으신”

본문 말씀: 시편 37장 1절에서 11절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오늘의 말씀

어제 목요일 새벽 가정 예배에 이어 계속해서 다윗이 누렸던 기쁨을 통하여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의 비결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다윗의 기쁨은 주의 백성들로 인해 기뻐한 기쁨입니다.

본문의 3절 말씀에서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의 형제자매들로 인해 기뻐하십니까? 우리가 훗날 천국에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는 것은 진정 기쁨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 곁의 성도들과 함께 사는 것이 진정 기쁨일까요? 혹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교우들 가운데 내 신경을 거스르는 성도는 없었습니까? 아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을까요?

이 사람의 기쁨을 제일 많이 빼앗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떤 일로 기뻐하다가도 어떤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이 집 안 사람이든, 집 밖 사람이든, 교회 사람이든, 아무튼 어떤 사람으로 인해 기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 때문에, 행동 때문에, 표정 때문에 기쁨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다윗은 모든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기쁨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인들 왜 사람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분노와 미움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그가 기록한 시편을 보면 다윗을 해하려고 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본문 말씀에서 그들은 존귀한 자들이고, 자기의 기쁨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도님은 자신이 주님만을 기뻐하게 되고,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되니까 전에 미워했던 사람들을 기뻐하게 되고 원수라고 축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제일로 기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주안에서 성도들을, 교우들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먼저 기뻐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기뻐하지 못할 때, 사람으로 인해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시험을 받고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신앙도 잃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힘쓸 때 성도,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존귀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정말 그들 속에 우리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있으면 솔직히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려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정말 기뻐해 보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기뻐해 보면, 정말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 안에서 존귀하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그 성도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도 기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5절과 6절 말씀에서,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산업과 잔의 소득과 분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하나님 같은 산업과 잔의 소득과 분깃이 또 어디 있습니까? 현재 세계 최고의 산업이 아마존이라고 하지만 그런 아마존을 천만 개를 갖다 줘도 하나님이란 산업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산업이라고 고백한 다윗에게 있어서 그 외에 부수적인 것들은 다 하나님의 섭리로 재어 준 구역으로서 다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열두지파에게 땅의 구역을 줄로 재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을 받았을 때 열 두 지파들이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므낫세 지파에게는 이렇게 넓은 땅을 주셨고, 단 지파인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작은 땅을 주셨나?” “왜 우리 베냐민 지파에게는 골짜기가 많고 비옥하지 않은 땅을 주셨을까?” 만약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구역에 대해서
항상 불만을 가지고 살면 그 삶은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대답은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줄로 재어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산업과 잔의 소득과 분깃이시니까 자기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나의 가정입니다. 나의 배우자입니다. 나의 자녀입니다. 나의 교회입니다. 나의 몸입니다. 나의 직업입니다. 나의 삶입니다. 나의 은사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완전하시고, 선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섭리로 내게 줄로 재어주신 아름다운 구역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아들을 나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산업과 잔의 소득과
분깃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고 또한, 하나님밖에 내게 복이 없고, 내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데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나의 배우자를 보니, 나의 자녀를 보니, 나의 집을 보니, 나의 몸을 보니, 나의 교회를 보니, 전에는 몰랐었는데 나의 배우자가, 나의 자녀가, 나의 교회가, 직장이, 나의 몸이,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의 구역과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현재 나의 구역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줄로 재어주신 최상의 구역입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하나님밖에 내게 복이 없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고, 이를 즐기는 삶이 가장 복되고 신나는 삶입니다. 시편 49편 20절 말씀에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복도 모르고 남의 것만 곁눈질하는 인생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범사에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존귀한 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내 앞에 그 떤 우상이 있어 하나님을 가리지 말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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