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6일 새벽 예배

찬송: 새 484장 (옛 533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본문 말씀: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4절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의 말씀

지난 해 신문에서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품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유품에 새겨진 이름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이고 또 그 유품의 연대를 측정해 본 결과 AD 60년도 정도로 나왔기 때문에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이들에게 증거가 된다고 많은 기독교 고고학자들이 흥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사성은 이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증거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 발굴된 그 유품에 그렇게 흥분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본문을 기록한 야고보는 대체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교훈들 가운데 제일 앞서 나온 것이 시험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럼 야고보는 왜 그 많은 교훈 가운데 먼저 성도에게 오는 시험, 고난을 먼저 다루었는가?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대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동족들에게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다가 나중에는 돌에 맞아 순교 당하고 말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자신이나 같은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이 쉬지 않고 밀어닥칠 것을 내다보고 제일 먼저 이 고난에 대하여 교훈을 준 것은 적절한 대책이었을 것입니다.

먼저 야고보는 2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시험”은 신앙 때문에 외부로부터 겪는 고난과 환난 그리고 마귀의 유혹들을 모두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고난과 환난에서부터 해방되지는 않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이 세 가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말씀으로 무장시키시고 강건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는 능력의 방편입니다. 성도는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고난이라고 합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고난은 성도에게 영적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19편 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실로 다윗은 많은 고난을 당한 자였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많은 고난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얼마나 무서운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얼마나 많이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얼마나 강인하고 백절불굴의 왕이 된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고 축복하신 사람 치고 고난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성도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말한 이 “여러 가지 시험은” “각 가지 유혹”이라는 뜻도 됩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시험 곧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혹한 마귀가 주님의 자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안 할 때 그의 움직임이 얼마나 분주하겠습니까? 마귀는 절대로 졸거나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에겐 Vacation이 없습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귀는 기회만 포착되면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마치 낚시꾼이 바늘에 물고기가 걸렸을 때 조금의 양보도 없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 마귀의 파괴적인 유혹을 허용하시는가? 그것은 성도가 주를 믿는 믿음과 주님의 능력으로 유혹을 이김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의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어떤 시험이나 시련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나에게 Plus가 되게 하시지 Minus가 되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전 10장 1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감당 못 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시련이나 고난이 임할 때, 당황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어려움을 통하여 나의 믿음에 유익이 될까 하며 여유 있게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문에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성경은 고난과 시험을 기쁘게 여기는 것도 부족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시험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자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고난과 시험이 올 때 “잘 견뎌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과 시험이 올 때 “온전히 기뻐하며 주님께 감사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성도가 시련을 온전히 기뻐해야 할 것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고난과 시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러한 영적 축복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3절에서 말하는 “믿음의 시련”은 헬라어 원어로 “도키미온” 인데 이 말은 제련소에서 순금이나 순은을 뽑아낼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순금이나 순은을 어떻게 뽑아냅니까? 강력한 불 속에 집어넣었다가 또 빼고 또 넣고 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도가 시련을 만날 때 그 시련을 기쁨으로 잘 이기고 감당하면 24K 순금과 같은 성도가 되어 빛나는 영광의 성도가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가 S 박사가 한국에 와서 특별집회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그의 13살 난 딸이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수술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무릎 아래쪽만 잘라내었지만, 상처가 심하여 다시 한번 절단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며, 수술하는 동안에 여러 번 맥박이 멈추고 숨이 멈추었으나, 계속적인 응급조치와 수혈로 생명은 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아이오와 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그들 부부는 그 어린 딸의 절망하는 모습을 그리며 어떻게 위쪽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아이오와에 도착하여 병원 문에 들어설 때 그의 아내는 울고 있었으며, S 박사는 그래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에. 마음에서는 진정으로 찬미하고픈 생각이 없었으나 억지로 ‘할렐루야,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도 S의 딸은 오히려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안녕, 아빠! 안녕, 엄마!”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엄마, 내가 왜 사고를 당해 다리를 자르게 되었는지 이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는 나와 같이 불구가 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게 하시려는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얼마 후 의사는 그들 부부에게 다시 한번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할지 모르니 딸을 잘 설득시켜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S 박사가 다시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의 딸에게 이야기하자, 그의 딸은 오히려 담대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나의 다리를 더 많이 잘라낸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가지고 계신 계획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여 세상에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상처가 객관적으로는 추한 것이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응답하고 순종할 때 그 상처는 변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의 시련이 큰 축복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인내가 큰 축복이 되는가? 4절에서 말씀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영어로는 be mature 즉 “성숙하고”입니다)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는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충만히 누리게 해 줍니다.

어린아이들은 인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채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이 되면 기다릴 줄 압니다. 인내가 조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인내가 성도에게 있어서 복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일을 행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인내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의 열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인내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이 인내가 결여되면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 나의 방법이 앞서게 됩니다. 인내를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앞당기려다가 오히려 죄와 슬픔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 풍성한 축복들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인내가 부족하여 그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 주시는 방법이 믿음의 시련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도의 인내가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것으로만 만들어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3절에서 말하였듯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연단됩니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더 순종하고자 하는 성품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인내의 축복과 상급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여러 가지 시험이 올 수가 있습니다. 나에게 유익과 축복이 되게 만드시는 시험을 믿음과 인내로 잘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나로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가 시작되기까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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