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0일 새벽 예배

찬송: 새 380장 (통 42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서 18절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오늘의 말씀

어제 금요일 새벽 가정 예배 시 말씀에 이어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 곧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은,

셋째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은 거룩한 삶입니다.
본문의 3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리고 7절 말씀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절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란 것입니다. 특별히 재림을 준비하는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뻐하시는 것은 거룩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의 3절을 보시면 거룩한 삶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음란을 버리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물론 음란을 버리고 성적으로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 거룩한 삶을 다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이 음란 곧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거룩하지 못하다는 분명한 증거이고 음란은 거룩함을 추구하는데 있어 최대의 장애물이란 겁니다. 성경을 보나, 역사를 보나 하나님 경외를 잃어버린 시대일수록 음란, 동성애 간음 등 성적인 타락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소돔성이 바로 그 예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거룩한 삶에 대하여 말하면서 음란을 버리라고 한 것은 그 만큼 데살로니가 지역이 음란한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면 당시 데살로니가에는 ‘카바리’라는 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카바리 신전에 거주하는 여 사제들과 1000명 가량의 창녀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종교의식의 일부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아예 법으로 남편은 여자 노예를 둘 수 있고, 남성들은 여종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정부를 둘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당시 데살로니가는 성적으로 상당히 타락했던 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시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그런 세상에서 성적인 순결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음란함을 버리고 거룩함을 갈망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그들은 거룩한 신부로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준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 거룩함 곧 음란을 버리고 성적인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의 모든 성도 역시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렇고 7절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거룩하게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크리스천 성도가 이 “거룩”을 이렇게 잘 정의했습니다. “거룩”이란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거룩함이란 혼자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는 누구나 경건하고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 거룩함인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두 데살로니가 교우들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된 거룩한, 순결한 신부로서 잘 지켜야 하는 겁니다. 이 일을 바로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네 째로,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는 성도들은 열심히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지금 사도바울은 형제 사랑에 관해서는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아주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마크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실제로 사랑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소명입니다.

그럼, 소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적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소명이 사랑이라는 겁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성도에게 있어서 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지 모릅니다..베드로전서 4장 7절에서 사도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 곧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성도가 가장 힘써야 되는 것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겁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은 본문의 4절 말씀대로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뜨겁게 사랑해야 됩니다. 남편의 최고의 소명은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는 겁니다. 아내도 에베소서 5장 33절에서 명하였듯이 남편을 존경함으로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선 한 형제자매 된 자들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래서”의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해서, 나에게 잘해줘서, 내 마음에 맞아서의 “그래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당신이 내 마음에 안 들고, 나에게 못해주고, 나에게 원수같이 대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수님 때문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바로 “예수님 때문에” 사랑한다는 겁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때문에”, 나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 때문에”, 나에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뭐 다른 이유가 없어요. 단지 예수님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사랑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절에 보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사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다 사랑했다는 겁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성령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부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날이 그리 길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재림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일 즉 부부지간과 교회 안에서의 피차간과 나아가 모든 사람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성도들은 현실의 주어진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 당시 많은 교인들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잘 못 이해해서 자기들의 일상생활을 등한시 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재림 하시는 데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성도들 가운데서 생업, 노동, 학교 등 다 중단하고 오직 영적인 것에만.몰두해야 된다는 이유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의 11절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근면하고 성실하데 일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라고 권면한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르게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현실의 삶 속에서 내게 주어진 직업에, 생업에, 학업에 충실합니다..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은 그 누구보다도 기쁘게, 성실하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합니다. 공부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일터에서 땀 흘려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라”는 책에 보면, 매트 라이언이라는 사람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이언은 어시장에서 물고기를 파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연어를 사러 라이언의 가게에 왔습니다. 라이언은 그와 이야기를.나누며, 손님이 원하는 좋은 연어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라이언은 손님의 까다로운 주문 사항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주면서 기쁘게 그 일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손님의 마음도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라이언의 즐겁게 일하는 모습에 감동된 손님은 처음에 연어 반 마리만 사려는 마음을 바꾸어서 나중에는 세 마리를 통째로 사 버렸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아마도 그 손님이 라이언에게서 산 것은 세 마리 연어가 아니라 라이언의 일하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정직과 거룩함으로, 사랑으로 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본문의 12절 말씀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외인에게도 본이 되는 삶이 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 예수님의 재림이 약속되어있다는 것은 실로 큰 위로와 소망과 축복과 상급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 예비 된 그 영광스런 예수님의 재림을 거룩함과 서로 사랑함과 맡겨진 일에 주를 위한 성실함으로 잘 준비하는 복 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서로 위로함과 거룩함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가 시작되기까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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