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6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이사야 12장 1절에서 6절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 12장을 보시면 제 성경에는 본문 말씀의 제목을 “감사 찬송”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감사 찬송”입니다.

이 아침은 오늘 내려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성도 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릴 감사 찬송의 내용의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평생 감사 찬송의 삶을 살아야 되는 이유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1절 말씀은 “그 날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In that day” 그러니까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려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반복하고 있는 말이, “그 날에”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이 죄악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날에 곧 이새의 뿌리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 분의 복음 곧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게 될 회복이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이스라엘과 열방의 심판이 있지만 그러나 메시야로 인한 회복의 영광 바로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 될 열방의, 여러분에게 감사 찬송이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 날에”의 회복의 성취됨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 날에”의 회복이 여러분의 삶에 성취되었고 적용되었습니다.

본문의 1절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니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왜 우리가 주님께 영원토록 감사찬송을 올려드려야 됩니까? 전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노하셨었는데 이제는 주의 진노가 우리에게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전에는 왜 우리에게 노하셨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몹시 미워하십니다. 죄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여러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1잘 말씀을 보시면 복음이 있습니다. 복 된 소식이 있어요! “이제는 (우리의 죄에 대한) 주의 진노가 돌아섰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묻지 않고 그냥 없는 것으로 여겨주셔서입니까? 절대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하기 때문에 있는 죄를 없다라고 여길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영원한 진노의 심판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바로 그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날에”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하나 뿐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본문의 1절에서,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 위로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의 진정한 감사 찬송은 무엇에서부터 나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무슨 일로 힘들고 고달프고 지쳐도 주님께 감사 찬송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의 2절 말씀을 보시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Surely God is my salvation!” “정말, 확실하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바로 이것이 우리의 매일 매일의 고백과 감사 찬송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날마다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한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할 때 두 가지 구원을 말합니다. 먼저 소극적인 구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병에 걸렸었는데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구원입니다. 재정적으로 몹시 힘들었는데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 구원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힘들었는데 잘 회복되었습니다. 그것도 구원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와 재앙으로부터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도와주셨고 해결해 주신 것은 다 어떤 의미에서 구원 곧 소극적인 구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구원 곧 a salvation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이 아닌 the salvation 궁극적인 구원 바로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영원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성도들이 이 궁극적인 구원보다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에서 더 감사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억만 죄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일에 대한 감사 찬송보다 일시적인 것들에서 구원해 주신 일들에 더 감사 찬송을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일시적이고 소극적인 구원이라도 날마다 그 구원들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구원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감사찬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 교우 여러분, 코로나 펜데믹에서 구원해 주실 하나님과 함께 우리를 영원히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더욱 감사찬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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