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6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잠언 17장 10절에서 22절

10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11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13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4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15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19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주옥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지혜의 말씀들 가운데 몇 가지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10절 말씀입니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여기서 지혜 있는 사람과 미련한 사람의 차이를 말씀했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말 한 마디만 하면 빨리 알아듣고 바른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매를 백 개를 때려도 지혜 있는 사람에게 말 한 마디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이 구절 외에도 잘못된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로잡아 주시는지에 대해 여러 곳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겐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죄 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 말씀처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은 다 연약하고 어리석습니다. 완전하질 못합니다. 한 치 앞길을 보지 못합니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면 다 헛똑똑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선한목자이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은 양같이 각기 제 길로 가기를 좋아하고, 제 길을 고집하고 걸어가는 우리를 간섭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처럼 충고하십니다. 때로는 징계도 내리십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그 길로 내버려두었다간, 큰 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돼지가 잘못 한다고 벌주는 것 보셨나요? 돼지는 벌 줄 것 없습니다. 그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서 살만 찌게 합니다. 왜요? 얼마 있다 잡아 먹으면 되니까요! 그러나 제가 보니까 훌륭한 짐승일수록 길들이기 위해서 고생을 시키더라고요. 똑똑한 애완견이나, 돌고래나 얼마나 고생을 시켜서 훈련을 시킵니까? 그래야 쓸모 있는 짐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먹고 살만 찌면 되기 때문입니다. 돼지에겐 좀 미안하지만 나중에 잡아먹으면 되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연약한 사람도 특별히 우리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전혀 훈련이, 징계가 필요없는 돼지가 되면 얼마나 불쌍할까요? 아무리 잘못된 길로 나가도 내버려두는 것은 포기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말씀하시길,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시면 징계는 다 받게 되는 겁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도 하나님께선 우리가 교만하지 않도록 사도바울과 같은 징계의 가시를 줍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징계를 통해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아하,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의 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말씀으로 충고하실 때, 경고하실 때, 책망하실 때 빨리 깨닫고 돌아서는, 바른 길 가시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주시는 지혜의 말씀은 14절입니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여기서 둑에서 물이 새는 것을 무엇을 암시합니까? 둑이 무너진 다는 겁니다. 둑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한 도시가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1차 대전도 무슨 큰 원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의 작은 시비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99퍼센트의 싸움은 사실상 하지 말아야 할 싸움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명분으로 시작해도 싸움은 결국 파괴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지혜로운 자는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강한 자는 잠언서 16장 32절 말씀처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22절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여기서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령의 근심”은 감정적인 인데 즉, 상한 감정, 근심이 쌓인 감정, 미움의 감정, 증오의 감정”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이 뼈를 마르게 하는 그러니까 육체에 치명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도 사람의 이런 감정들이 육체와 정신에 얼마나 해로운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알 수 없는 병도, 단지 미워했던 상대방을 용서하고 치유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근심이 사라지면서 두통에서 치유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 우리 삶에 이 감정, Emotion 이 끼지는 영향이 너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러한 감정의 영향력을 마음의 즐거움으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선 이 “양약”을 “Good medicine”이라고 말했습니다. “A joyful heart is good medicine” 말 그대로 “좋은 약”이예요. 우리 감정에, 우리 몸에, 우리 삶에 있어 좋은 약, Good medicine이 “Joyful heart” “마음의 즐거움”이랍니다. 그런데 이 죄 많고, 어지럽고, 문제가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마음이 항상 즐거울 수 가, 기쁠 수 가 있을까요? 가능하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마음에 즐거움이, 기쁨이 있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셨습니까? 그럼 마음속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보다 더 좋은 것 있을까요?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잠언서 15장 15절에서,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데 매일이 잔치가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는, 성경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여러분 기분과 감정과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의 명령이시니까 기뻐하세요. 기뻐하지 않으시면 불순종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항상기뻐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할 것만 생각하세요.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도 명령하였습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듯이 감사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도 새벽에 기도하면서 더도 말고 감사할 내용 열 가지만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하시자고요. 그럼 마음이 감사로 즐거워 질 줄로 믿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을 양약이라고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지금 우리 앞에 양약도 있고 독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양약을 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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