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6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시편 139편 1절에서 12절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나를 아시는 주님”

1998년도에 LA공항에서 콜로라도 덴버로 떠나는 비행기들이 다 뜨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콜로라도에 심한 폭설로 인해 비행장이 마비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제 시간에 콜로라도 행 비행기를 타야 되는 승객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다행히 비행기 한 대만 뜰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서로 그 비행기를 타야 된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도 뉴욕에 갈 때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승객들이 비행사 직원들에게 몰려와 막 항의를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성난 얼굴을 하고 카운터 앞에 있는 승객들을 밀어 제치고 여직원에게 다가와서, “나는 First Class 승객이오, 나는 반드시 이 비행기를 타야만 되오.”라고 말하니까, 여직원이, “지금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언짢은 음성으로, “Do you know who I am? 당신 나 누군지 알아?” 조금 당황한 여직원이, “승객님, 지금 승객님 앞에 있는 분들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Do you know who I am? 당신 나 누군지 알아?”

그러자 여직원이 황당해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마이크를 입에 대고 스피커로 모여 있는 모든 승객들에게 말하기를, “승객 여러분, 여기 제 앞에 남자 분이 한 분 계시는데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신답니다. 혹시 이 분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예,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누군가가 나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우리를 너무 잘 아는 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 대해 100%, 완전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며”(3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 이다.”(4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밝히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 혀의 말을 모두 아십니다. 그리고 본문의 2절 3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어섬, 앉음, 누움, 우리의 모든 길,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말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행동을 아시고, 우리의 은밀한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할 때에 우리는 굉장히 두려운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을 매순간마다 의식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오늘 날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너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행동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카운터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자세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 하고 없는 것 하고 왜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코람데오” 곧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날마다 의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무척이나 달라 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감사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무섭다”, “두렵다”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께서 본문의 5절에서 말 했듯이,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둘러싸고”란 말은 “감싸주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선 내 지나온 삶, 내 앞으로 살아야 할 삶, 내 앞, 뒤도 주님은 포근하게 감싸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를 안수하신답니다. 나를 축복하신답니다. 물론 하나님은 내 연약함과 결점과 허물을 아십니다. 내 넘어짐도 아시고요, 내가 얼마나 잘 흔들리는지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연약함 때문에 나를 비난하거나 버리거나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나를 감싸주시며 나를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치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감시 카메라 같은, 자기를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잘 못하면 벌주는 경찰 같은, 자기를 통제하려는 절대군주 같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자기의 아버지가 사랑의 아버지인 것을 확신하는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알고 있고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선, 늘 변함 없는 사랑으로 자녀의 모든 것으로 알고 도와주려는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염려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고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아멘!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위로와 축복이 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7절부터 12절에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피하거나 숨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이든, 음부이든, 바다 끝이든, 아직 밝지 않은 새벽이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선 어디에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연약해 질 때, 내가 홀로라고 생각할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거기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붙잡아 주십니다. 안수해 주십니다. 축복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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