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 가정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사무엘상 30장 1절에서 10절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9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역경 극복의 방법”

본문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자기가 머물고 있었던 시글락을 빈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습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갈 때부터 아말렉은 늘 약점을 노리고 습격해 오는 적으로 유명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행렬에 지쳐 있을 때 그 약점을 노리고 뒤에서부터 습격해 오는 아주 야비한 족속들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정도 시글락을 비워두었을 때 그 틈을 노리고 습격해 온 것입니다. 시 글락을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여인들을…, 젊거나 나이 든 여인들을 가 사로잡아 끌고 간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말렉은 사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말렉 족속처럼 사탄은 늘 우리의 틈과 약점을 노리고 공격해 오는 아주 비열한 대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말고 늘 깨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틈을 보이지 말고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기도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 사탄의 큰 습격을 받은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대적 마귀는 오늘도 우리의 빈틈과 약점을 찾아 노리고 습격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 성령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믿음으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사탄을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사탄은 우리를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에 대해서 늘 두 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탄보다 강하시고 사탄의 머리를 부서뜨린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사탄에 대하여 방심은 하지 마십시오.

오늘 설교 제목을 “성도의 역경 극복의 방법”이라고 정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말렉의 습격으로 인하여 역경에 처하게 됩니다. 4절을 보세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얼마나 큰 역경이었으면 그 정도 였을까요? 여러분,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운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본문에선 다윗이 그 튼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역경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일생을 전쟁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싸워나가는 것이 곧 인생입니다. 역경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경이 있는 곳은 공동묘지와 천국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늘 삶의, 전쟁의 역경을 예상하셔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야고보는,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한 시험은 영어로 “Trial” 곧 시련 또는 역경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When all kinds of trial comes”라고 말했지 “If all kinds of trial comes…”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성도가 역경을 당할 수도 있고 안 당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왜냐? 야고보서 1장 3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 “이는 너희 믿음의 역경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경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인내하는 성품, 예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여러가지 역경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한 겁니다. 역경은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역경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쁘게 여기래요. 왜요? 역경이 없는 게 아니라 역경을 당하는 게 나를 더 복되게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까 여러분이 찬송한 내용처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 슬픈 일, 역경, 고통, 실패, 질병 등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합력하여 선을 만들어 가신 다는 거예요. 그게 만사형통입니다. 오늘 역경을 당한 다윗, 수 없이 역경을 당한 다윗이 훗 날 시편 119장 71절에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역경(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니” 보세요.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유익을 얻은 게 아니라 역경을 당함으로도 유익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로, 다윗은 역경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을 힘입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보세요! 본문말씀의 6절을 보세요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니” 다윗은 블레셋이 습격해서 도시를 불사르고 여인들을 다 잡아간 것도 큰 슬픔이고 역경인데 다윗을 위로해야 할 백성들마저 다윗을 오해하고 돌로치려고 했으니 정말 얼마나 크게 다급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에겐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역경을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기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자기를 지켜 주실 줄을 믿은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선 이런 다윗의 믿음에 그대로 응답해 주셔서 다윗에게 역경에 대처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선 성도에게 역경 없는 삶을 약속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당해도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도와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 모두가 당한 일이 있습니다. 역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나의 아버지이시고 목자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버리시길 바랍니다. 6절 하반절에서,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여기서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그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만이 아니십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전에 주일학교에서 한 어린아이가 자기 친구에게 자기 옆에 서 있는 아빠를 보고, “내 아빠야!”라며 용기가 있어 보이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에 다급해 질 때 나의 아빠 되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힘입으시고 용기를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다윗은 역경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아말렉에게 습격을 당하고, 여인들을 붙잡아 어디론 지 사라진 아말렉 족속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또는 자기가 쫓아가면 아말렉 족속을 따라잡을 수 있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상황이겠습니까? 그러나 8절을 보시면 다윗의 18번이 나타납니다. 바로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거예요. 다윗의 삶을 연구해 보면 다윗이 늘 하나님께 물으면서 행동하고 결정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8절 말씀을 보세요,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어느 날 한 성도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경건하신 분이시니 미래에 대해 잘 아시겠네요! 그 때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연약한 인간이라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붙잡고 계시는 분은 알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자는 앞일을 미래를 내다보는 자가 아니라 앞일을 붙잡고 다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자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얼마나 자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며, 얼마나 멀리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멀리는커녕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인간이 아닙니까? 본문말씀에서 다윗은 말할 수 없는 큰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힘입었습니다. 살아계신 자기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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