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1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예레미야 13장 1절에서 11절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어제 수요일 새벽 가정 예배에 이어 같은 본문 말씀으로 이어지는 교만에 관한 내용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내가 너희의 교만을 썩게 하리라…”

그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미워하시는 교만은 어떤 교만입니까?

어제 다룬 말씀에서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기의 완악한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본문의 10절 말씀입니다. “그 마음의 완악한대로 행하며…” 영어성경에는, “…Who follow the stubbornness of their hearts…” 그러니까 자기의 고집대로만, 자기의 고종관념대로만, 자기의 편견대로만, 자기의 취향대로만, 자기의 주장대로만 행하는 것이 교만이란 겁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교만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의 고집이나, 자기의 고종관념이나, 자기의 편견이나,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완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하냐면 자기가 멸망할 때까지, 지옥에 갈 때까지 자기의 완악한 마음대로 행한다는 겁니다. 전도하다보면 종종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예수는 안 믿겠다” “손에 장을 지진다 해도 교회는 안 가겠다” 등등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 나옵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그 완악한 마음을, 그 교만한 마음을 성령께서 눈 녹듯이 녹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악해 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가령 어떤 일이 하늘의 상급을 받는 일임을 아는데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아는데도,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데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임을 아는데도, 나의 고집을, 나의 주장을, 나의 고정관념을, 나의 미움을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성도가 교만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순종하지 못할 때도 많은 경우가 마음이 완악해서입니다. 마음이 완악하니까 인내하지 못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겁니다.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마음이 완악하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지 못하는 겁니다. 결국 그 모든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이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이 예수님을 위해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이, 마음의 완악함이 하늘의 상급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 공동체나, 가정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대부분이 다 마음이 완악해서가 아닙니까? 자기의 취향만을, 자기의 주장만을,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워서가 아닙니까?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자기주장만 있을 뿐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결과 비 성경적인 바리새인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취향에 맞는다고 받아들인 말씀이 반쪽자리인 줄도 모르고, 자기는 말씀에 근거를 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더욱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마음은 완악한 마음입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빌립보서 2장 3절 이하 말씀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째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본문의 9절 말씀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큰 교만으로 그들을 상징하는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 하반절 말씀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우상을 따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같이 되리라” 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교만은 우상을 섬기고 절하는 데 있었습니다. 결국 그 우상숭배의 교만으로 그들은 큰 징계를 받게 됩니다. 성읍들과 성전이 다 황폐하게 됩니다.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럼 왜 우상을 섬기는 것이 교만입니까?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하고, 더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앞세우는 것 등등은 다 우상입니다. 그 것이 돈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명예, 인기, 건강, 자존심 등등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행하셨고, 또 행하고 계신 놀랍고 위대한 일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심각한 교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48장 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모압 족속들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모압 족속은 하나님 대신 돈과 사람의 능력을 믿으므로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대신 돈이던, 사람이던, 나의 능력이던, 나의 업적이던, 그런 것들을 의뢰하면, 그런 것들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큰 교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내가 하나님 대신 믿은 것들을 보란 듯이 다 무너지게 만드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믿는, 그런 무엇으로도 우상을 만드는 교만을 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원망 불평하는 것도 교만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염려하는 것이 왜 교만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지어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신앙인들도 현실에 대해, 앞날에 대해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낙심 한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교만으로 책망하셨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자녀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원망 불평한다는 것은 자기들이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감격스러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도와주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만이란 겁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로 인해 힘들어 하는 것도 많은 부분에 있어 나의 교만 때문입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나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남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면, “나를 뭐로 알고!”라고 분노하는 나의 참 모습 속에서 교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성자는, 내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으려면, 남이 나에게 안 좋은 말을 할 때, 안 좋게 대할 때라고 합니다. 물론 남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 심각한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교만입니다.

현재 내가 괴롭고, 열 받고, 화가 나고, 미워하고, 힘들고, 낙심되고, 시험 받고, 지치고 등등의 원인도 다름 아닌 나의 교만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더 무서운 교만은 내가 선한 일을 한 후에, 심지어 내가 기도를 많이 하니까, 내가 말씀을 전하니까 어떤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내가 믿음을 가지고 주의 일을 잘 했을 때, 바로 그때 마귀가 내 안에 무서운 영적 교만의 바람을 집어넣어줍니다. “어! 내가 꽤 괜찮은데? 내가 꽤 대단한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은근슬쩍 높이는 교만을 하나님께선 몹시 미워하십니다. 그러니까 지난 이틀 동안의 새벽 가정 예배 말씀의 내용 볼 때 결국 우리 삶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교만이란 겁니다. 나의 삶에 큰 손실을 가져오는 것도 교만이란 겁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잃게 만드는 것도 교만이란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지 못하게 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조심해야 될 교만은 바로 오늘 본문 17절 말씀에서,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그 교만이 가져오는 징계로 말미암아 예레미야 선지자는 울 것이고 울다 못해 눈물을 흘려 통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있어 내가 가장 힘써 가져야 할 것은, 사모해야 할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유명한 성안토니의 말입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모든 교만을 버리고 모든 겸손으로 주님이 기뻐 동행하시는 삶을, 주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며칠 안 남은 2020년을 보내면서 다가오는 2021년에는 교만한 내가 아닌 겸손한 내가 되어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나와 남에게 복이 되고, 하늘의 상급이 되는 삶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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