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9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예레미야 13장 1절에서 11절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 새벽 가정 예배 시에 내려주신 말씀은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되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로, “너희는…교만하지 말지어다.”입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평생, 신중하게 간직해야 할 교훈이며 경고입니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하나같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무섭게 다루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했던 챨스 스폴전 목사님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선 죄를 다루실 때 어떤 죄는 손가락으로 다루시나 교만의 죄만큼은 손목을 걷어붙이시고 다루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손목을 걷어붙이나요? “나 하고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 “한 번 맛 좀 볼래?” 등등의 상황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의 죄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으시겠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잠언서 16장 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8절 말씀에서도,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남 왕국 유다를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그들의 큰 교만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럼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기록한 자는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선 예레미야에게 많은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 유명한 환상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나오는 “썩은 띠”의 환상입니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대표하는 환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베로 된 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가 그 띠를 가지고 바벨론에 있는 유브라데스 강가 바위틈에 묻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바위틈에 묻은 띠를 파서 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 띠가 완전 썩어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런 환상의 뜻은 무엇입니까?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띠는 바로 타락하고 심히 부패한 남 왕국 유다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띠를 유브라데스 강 바위틈에 묻으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남 왕국 유다가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유브라데스 강이 있는 바벨론에게 침공을 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수 백 년 동안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리 아니하면 너희 성이 무너질 것이고, 흩어질 것이고, 잡혀갈 것이다.”라고 경고 하셨음에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성전은, 성읍들은 다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돌아오라고 하실 때에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안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런데 말 안 듣는 자녀를 돌아오게 하실 때는 아주 힘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로 두 번 돌아와야 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받는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것은 여러분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번 돌아오는 것으로 끝납니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또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도 아직 이 구원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도드리고 있는 한 그분들도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가 구원을 받았지만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로,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것은 그들이 택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답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자답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열방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고, 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과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의도하신 사명의 삶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대로, 맡겨주신 사명대로, 은사대로 살지 못하고, 사명에서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선 요한계시록 2장에서 그와 같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으니 그 때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구원은 받았으나 주를 위해 살지 못한, 주를 위해 충성하지 못한 삶에 대한 평가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본문의 9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남 왕국 유다나, 북 왕국 이스라엘이나 다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반드시 썩게 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15절 말씀에서,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교만하지 말지어다!” 왜냐면 교만이 가지고 오는 결과가, 심판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교만하지 말지어다!” “너희는 교만하지 말지어다!”

우리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되는 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가장 먼저 천사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마귀는 없었습니다. 마귀는 원래 영적 존재로서, 천사로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자기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교만이 그를 마귀로 타락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로 죄를 지은 아담의 죄는 어떤 죄였습니까? 단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입니까? 에덴동산에는 선악과 외에도 더 좋은열매들로 가득한데 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까? 마귀가 유혹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이 선악과를 먹으면 너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라고 유혹했을 때 피조물인 아담이 자기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교만으로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지은 교만의 죄를 그대로 인간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그 교만의 죄가 인간을 하나님과 격리시키게 만들고, 세상을 죄로 오염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교만을 얼마나 싫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아담 이후로 태어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다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 죄성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다 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가장 무서운 교만 곧 자기 우상화의 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끔 제 모습이, 제 삶이 완전 교만덩어리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의 반대를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하나님께선 겸손한 자와 동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어떤 학자가 겸손과 교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참 겸손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단한 겸손은,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만과 겸손에 대한 아주 일리가 있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내가 너희의 교만을 썩게 하리라…”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철저하게 교만을 버리고 성 어거스틴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의 최고 덕목 첫째인 겸손과 둘째도 겸손과 셋째 역시 겸손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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