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5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2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제일 많이 강조되고 있는 단어와 내용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강한 어조로 호소하는 내용도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바울이 이 기쁨으로 충만하 편지를 바로 옥중에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옥에 갇히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리고 그 슬픈 마음은 옥에 갇혀있는 동안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옥에서 엄청난 기쁨을 누렸다면 그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옥 안에서 발견한 기쁨이 너무 커서 옥 밖에 있는 교우들에게 편지를 써서 함께 기뻐하려고 했다면 더욱 예삿일이 아닙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기뻐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한 우리에게도 이런 중에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의 1절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로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종”이란 말은 원어적 의미로 누구에게 묶여있는 노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묶여있는, 붙잡혀 있는 노예라는 것을 특권으로 여긴 것입니다. 감사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자기를 위해 돌아가시고, 구원하시고, 자유롭게 하신 그리스도를 평생 그분의 노예로서 살겠다는 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무엇인가에 묶여있습니다. 붙잡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묶여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와 권력에 묶여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에게 묶여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존심에 묶여있습니다.

남미의 인디언 부족 중에 항아리를 이용해서 원숭이를 잡는 부족이 있습니다. 원숭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목이 좁은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둡니다, 그럼, 호기심이 많은 원숭이들이 항아리 쪽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항아리 안을 살피다가 손을 집어 놓어서 바나나를 잡습니다. 그런데 항아리의 목이 좁아서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을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숭이는 바나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눈만 말뚱거릴 뿐입니다. 그 원숭이를 잡으로 인디언들이 다가오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모두가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을 것일까요? 아니면 바나나가 원숭이를 잡은 것일까요? 둘 다입니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고 원숭이도 바나나에 붙잡혀서 묶여있기 때문에 결국 원숭이는 인디언에게 잡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거의 내가 집착하는 것에, 내가 붙잡고 있는 것에 묶여있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붙잡히고 묶여있습니다.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돈이라면 돈이 우리는 돈에 묶여서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자식이라면 우리는 자식에게 묶여서 사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가 집착하고, 붙잡고, 묶여있는 것이 만약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그것들로 인해 끊임없는 두려움과 염려와 불만족과 좌절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도바울처럼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께 묶여있는 노예로서 예수님을 받들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사도바울 옥과 같은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한 사도바울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모든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도”라는 말의 뜻은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바로 본문의 1절 하반절 말씀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모든 성도”라는 말에서 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기쁨”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의로운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상속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복된 관계 속에서 우리를 “거룩한 성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영적인 축복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 교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묶여있는 종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라는 것을 늘 잊지마시고 그 사실의 축복과 은혜와 특권과 상급을 누리게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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