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예레미야 애가 3장 19절에서 32절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오늘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애가”란 뜻은 예레미야가 쓴 큰 슬픔의 눈물의 편지란 말입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한 때 영광스러웠고 자랑스러웠고, 찬란했던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다 무너지고 황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포학한
바벨론에 끌려가고 아직 남아있는 백성들은 나라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고, 생업의 터전을 잃고, 굶주리고, 죽임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의 참담한 파멸의 모습을 보며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퍼서 큰 소리 높여 울고 그 눈물로 쓴 편지가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본문의 48절과 49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그럼 어쩌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된 것입니까? 바로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고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우상숭배의 죄는 더해가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선 무려 400년 동안이나 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중간중간 정신 차리라고 이웃 나라들을 매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고 다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항상 그 때뿐이었습니다. 또 살만하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우상을 끌어 들여와서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자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시는 모든 죄를 다 범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란 큰 매를 드신 게 남 왕국 유다의 멸망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으면 그 멸망의, 파멸의 참담함이, 비극이 어떠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런 큰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선 죄의 결과가, 죄의 참상이 어떠한 것이지를 남 왕국 유다의 파멸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남 왕국 유다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로 인한 징계를 받고 있는 모습의 참담함을 보며 크게 울며 슬퍼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저들의 죄의 심각성과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요 목사인 멕스 루카도는 자기는 한 시간에 한 번만 죄를 지을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안에서도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많은 죄를 짓는데 한 시간 안에 딱 한 번만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80년으로 잡고 사람이 한 시간에 적게 잡아 한 번만 죄를 짓는다면 80년 동안이면 무려 700,800번의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징계와 징벌을 가하신다면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애가서는 남 왕국 유다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에 대하여 말하면서 듣는 우리 모두에게도 죄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경은, “너의 죄가 정녕 너를 찾아낼 것을 알라!”라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죄에 대한 심각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바로 본문의 21절 말씀과 22절 말씀입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음 속에서도 진멸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 가운데 하나님처럼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존재는 없어요!. 여기서 “인자”란 말은 영어론 “great love” 위대하신, 크신 사랑입니다. “긍휼”이란 말은 “mercy”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자에게 베푸는 긍휼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다 할 때 “무궁하다”라는 말은 “never fail” 영원히,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식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영원히, 절대로 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리신 징계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민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런 하나님의 성품이 여러분에겐 어떻게 적용되었습니까? 이사야서 53장 6절에서 우리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다 죄를 범하여 멸망의 길로 갔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진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사야서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누구에게요? 예수님에게요! 하나님께선 그 인자와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죄로 인한 사망과 지옥 형벌의 진멸을 피하게 하시려고 자기의 하나 뿐인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우리 죄에 대한 징계를, 심판을, 진노를, 징벌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사랑과 긍휼을 가리키며 오늘 본문의 22절 말씀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애가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와 동시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무궁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은 예수님이 다 받으신 여러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발견합니다. 또한 그 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진멸에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무궁함을 발견합니다.

결국 남 왕국 유다도 북 왕국 이스라엘처럼 죄로 인해 멸망했습니다. 이것이 구약 역사의 마지막입니다. 이 사실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절대 행위와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인자와 긍휼의 무궁하심으로 택하신 백성들과 맺어주신 영원한 언약 곧 하나님의 일방적인 평화의 언약의 특성 곧 자기 아들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러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운 사랑과 긍휼로 구원 받은 여러분이 날마다 감사 찬양하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23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먼저 22절 말씀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성실하심을 맛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 주의 성실하심은 또 새롭습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주의 성실하심! 우리를 변함없이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주의 성실하심!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긍휼의 성실하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주의 성실하심! 그 모든 것에 대한 주의 성실하심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여러분은 아침마다, 날마다 주를 찬양하며 기뻐하며 감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깨달아야 할 것은 본문의 22절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와 성실하심이 매 해마다 매주마다가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선 광야의 아침마다 그 날 하루의 만나를 내리신 것처럼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께선 여러분이 이 하루를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날의 새로운 사랑과 자비를 내려 주신 겁니다. 내일도 확실하게 또 새로운 사랑과 자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 교우 여러분! 지금의 코로나 펜데믹 와중에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신실하심입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한 해를 보내시고 또 새 해를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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