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방법

지난 주일 예배 후 친교 시간에 집사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인 가운데 아래와 같은 말을 하는 분이 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게 보이시면 믿겠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한 번 쯤은 들을 수 있는 말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먼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가 없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임하셨을 때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신이 임재한 곳에 가까이 오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죄인인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접근하면 죽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영이시기에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4:24).  본질적으로 영이신 하나님은 어떤 물질적인 형태나 형상으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 24절

그리고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은 두부 한 모만한 크기의 두뇌로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한한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으로만 알 수 있는 겁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편 1절

첫 째로,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을 바라 볼 때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고있다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시 8:1). 한 은하계가 일 천억개의 별들을 담고 있고 그런 은하계가 일 천억개나 되는 우주의 광대함과 질서 정연함을 볼 때 그 모든 것이 우연으로 되었다는 무신론자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지구의 중력법칙을 발견한 뉴튼의 말처럼 천체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의 디자인은 다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매일같이 내가 누리고 있는 자연의 질서정연한 섭리와 신비와 이치와 유익에 대해선 그 누구의 계획과 디자인 없이 우연히 생겨진 현상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둘 째로, 하나님께선 성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66권의 성경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을 계시한 책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하지만 성경에 기록 된 예언들의 성취 하나만 보아도 그 어떤 책과 종교서적이 넘볼 수 없는 권의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다 성취되려면 천문학적인 숫자의 비율의 확률인데 그 모든 예언이 하나도 빚나간 것 없이 성취된 것만 보아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겁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 말씀임을 믿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실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 째로, 하나님께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요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장 9절

예수의 탄생으로 중심이 된 BC(주전)와 AD(주후)의 달력과 성경에 기록 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고대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들은 예수의 역사성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와 문명과 시대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계시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선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당신을 보이십니다.  이 글 서두에서 지난 주일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집사님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면 믿겠다”라는 말을 한 지인은 사실 그 집사님의 변화 된 삶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이 삶의 변화로 보여주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의 어설픈 논리와 논증으로 부인했던 하나님에 대한 지인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에 대한 말에 귀를 막을 수는 있으니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에 대해선 눈을 감을 수 없는 법입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창 밖에는 바람으로 인해 나무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바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내 삶을 변화시키신 예수님, 내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한 나의 착한 행실이 보여 질 때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이 한 주간도 나의 삶을 통해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바람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이는 어느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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