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 새벽 예배

찬송: 새 212장 (통 347)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서 13장 13절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존재의 문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 삶에 있어 사랑은 나의 존재 여부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이고, 반대로 사랑이 있으면 나는 나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란 겁니다.

가령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본능적입니다.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인간 보다 더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혈육 적인 사랑은 강요 안 해도 본능적으로 하게 됩니다. 물론 그런 본능적인 사랑조차 없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짐승만도 못하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부탁하신, 명령하신 대부분의 사랑은 혈육관계, 이해관계, 편애하는 관계 안에서의 사랑이 아닌 모든 이웃 관계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교회 관계와 모든 성도의 관계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선 심지어 원수 관계 안에서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우리에게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것은 가장 첫째 되고 큰 계명이니.”

여기서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제일 아끼는 것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몸이입니다. 몸이 없으면 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런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교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가치가 없고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본문의 1절 말씀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믿음이 있고, 실력이 있고, 영력이 있다 해도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내가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는 겁니다. “나는 아무런 의미와 가치도 없는 존재다!”라는 겁니다.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도 그가 제일 많이 강조 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성경이 사랑의 이야기이니 당연한 겁니다. 요한 1서 4장 7절에서 사도요한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내가 하나님을 아는 자임을, 내가 구원받은 자임을,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라는 겁니다.

본문의 13절 말씀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왜 여기서 사랑을 제일이라고 했을까요? 믿음과 소망도 제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과 소망도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만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천국을 믿음으로 힘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서는 그런 믿음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게 되는 게 천국에선 나의 구원도 완성이 되고, 나는 영원히 죄를 질 수 없는 영화로운 존재로서 믿음의 실체되신 예수님의 얼굴을 나의 얼굴로 맞대고 볼 수 있으며, 그 믿음의 실체되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니 이 땅에서 필요했던 믿음은 천국에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절망스런 일들을 많이 접합니까? 그러나 우리에겐 확고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소망, 천국의 소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절망스런 일들을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의 천국에 들어가면 더 이상의 소망은 필요가 없는 것이 이미 소망하였던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내려주신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열심히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선 우리 모두가 영원토록 완전한 사랑으로, 서로 완전하게 사랑하며, 영원토록 사랑하며 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을 사랑으로 간주한 것일 수가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오늘도 내가 살아있고,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고,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의 가장 큰 증거인 사랑이 나의 삶을 통해 이웃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도 서로 사랑함으로서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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