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시편 22편 11-21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 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 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 이다
짐승 우리에서 탄생을 시작으로 목수의 아들로의 성장이나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고백한 공생애 기간. 어느 것을 보아도 예수님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고난주간은 고난의 클라이맥스이다. 마지막 고난이 십자가의 길인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지신 예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이런 고난을 받으셨나? 사형수 만이 지고 가는 사형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나?
바로 나 때문에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고난의 신비를 깨닫자.
오늘 성경 구절을 보면 동물원이 연상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동물원이 아닌 마귀의 동물원.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실 때, 포악한 짐승처럼 예수님을 향해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다.
12절에서 황소와 힘센 소가 에워싸고, 13절과 21절에서는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16절에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던 개들이 에워싼다며, 온갖 불결하고, 포악하고, 사악한 짐승들이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사람도 조금 이성을 잃으면 이들 짐승과 똑 같은 야수로 돌변한다.
8절에서 다윗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이 벌레가 몰리듯이 이리 밀려가고, 저리 밀려가는 상황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만왕의 왕, 하나님이 왜 가시 면류관 쓰시고, 침 뱉음 받으시고, 채찍질 받으시고, 벌레 취급을 받으시는가?
내가 받아야 할 조롱을 다 대신 받으셨다. 왜 그러셨나?
예수님은 오로지 이 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에 벌레 같은 죄인 취급을 받으신 것이다.
15절. 사람의 몸에는 206개의 뼈가 있고, 각 마디마다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온 몸의 뼈가 어그러질 때 예수님은 그 각 마디의 고통을 다 느끼셨다. 그리고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가서 생기는 최악의 탈진 상태에 계신 것이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죄 덩어리인 우리 대신 머리의 가시 면류관, 발의 못까지 예수님의 육체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담을 허무셨다.
어떤 이는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 두 개의 십자가가 있다고 말한다.
착각의 십자가는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된 고통을 가리킨다.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만 버린다면 받지 않아도 될 고난을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복음을 위해 통과하는 고난이다.
우리가 통과하는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인가?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지 않으셨다. 어둠이 세상을 덮을 만큼 하나님이 눈을 돌리셨다. 왜 그러셨나?
나를 생각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고 버려두셨다.
나를 위해 치른 이렇게 큰 희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복음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3월 31일 수요일
이사야 53장 1-9절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 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절.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메시야라는 것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게 말구유에서 태어나지를 않나, 목수의 아들로 별볼일 없이 성장하지를 않나, 어디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삶을 사셨다.
2절. 영광을 좋아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아름답게 매력적인 부분이 없었다. 왜 그러셨나?
인간의 범죄의 결과인 저주와 고난을 없애기 위해 본인의 몸에 이 모든 저주와 고난을 담으셨기 때문이다.
왜 그러셨나? 무엇이 부족해서 저주받은 모습, 고난 받는 모습,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가 저게 뭐냐고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내 죄 때문이다.
3절. 예수님은 150파운드짜리 나무 토막을 지신 것이 아니라 질고, 즉 죄의 결과인 저주, 슬픔, 조롱, 심판, 진로, 경멸의 모든 무거운 짐을 우리 대신 받기 위해서 다 지셨다.
5절. 나를 위해. 내가 살기 위해 주님이 죽고, 나를 영광 받게 하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셨다. 나 하나 영생 누리게 하시려고 다 담당하셨다. 나는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있나? 나는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반역했고, 원수 되었었는데. 측량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다. 성 어거스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며 하나님은 참으시고 구원하신다고 말했다.
인자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사랑하십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을 때에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첫사랑도, 십자가 감격도, 식어져 간다. 우리가 너무 쉽게 잊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며 내 죽음을 기념하라고 부탁하신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 모든 것의 원천인데 이것이 식으니 그에 따른 봉사, 예배, 삶도 함께 식는다. 고난 주간을 맞아 십자가를 생각하며 십자가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동시에 엄청난 저주가 드러난 곳이 십자가이다.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보여주는 곳이 잔악한 십자가이다. 저주, 진노, 심판의 자리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죄 없으신 분인데 십자가에 못박히셨나? 우리는 로마 군병이나 유대인이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하지만 우리의 죄악 때문에 못 박히신 것이다.
6절.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머리에 얹힌 가시관이고, 예수님을 내리친 채찍이고, 못박은 못이고, 찌른 창이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하시는 지 보여준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알기에 죄를 경멸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그렇게 힘도 없고, 갈 곳도 없이 버리심을 받으셨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버리셨다.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고 떠났다. 사랑하던 여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고 갔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 버리고 갔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영원 전부터 항상 함께 하신 아버지까지 버리고 떠나신 순간이 가장 견디기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외치셨을 것이다.
죄는 영원히 버림받는 것이다. 영원한 지옥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버리심을 친히 받으셨다. 예수님이 버림 받으셨기에 나는 고아처럼 버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침묵하시고, 십자가에서도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시다. 묵묵히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완전한 순종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용서로 돌리게 하시려고 완전히 순종하셨다. 십자가는 우리가 불순종해서 지은 죄의 결과를 예수님이 다 담당하시는 완전한 순종으로 얻은 의를 몽땅 우리에게 돌리시는 바꿔 치기의 장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완전한 나의 의의자녀라고 하신다. 이 받은 선물에 감격해서 예수님께 순종하도록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이 나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