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여호수아 13장

오직 레위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inheritance)으로 준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여호수아 13: 14)
오직 레위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여호수아 13: 33)

레위인들은 땅을 유산으로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것은 하나님 자신이였습니다.
레위인들이 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는 일과 성전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는 일이였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모두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땅…크신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며 그분의 힘으로 정복한 그 땅…
모두가 자신의 몫을 받고 정착하고 편하게 살아갈 터전을 받았지만
레위인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땅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
결국, 땅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누리라고 하시는것…

만일 어떤 큰 부자에게 아들이 열둘이 있는데, 열한명의 아들에게는 땅을 주고, 먹고 살 사업을 다 마련해주고, 한 아들에게만은 ‘너의 몫은 바로 나다. 나와 함께 있으면서 즐거워하라’고 한다면… 그 아들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지요.
‘나도 이제 성장했으니 스스로 살수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여기 레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버지의 모습은 아닌듯 합니다.
그보다는 연인…신랑의 모습 같습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자기애인에게 가장듣고 싶은 말은
‘나는 네 꺼야..’라는 말일 테니까요…

레위인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업인 ‘화제물’은 예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레위인은 왕같은 제사장된 우리모두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나가서 적군과 싸우고, 농사짓고, 생업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아닌, 언제나 주님곁에 머물며 찬양과 제사를 드리던 레위인에게 자신을 기업으로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볼때, 오늘날에도 당신만을 바라보고, 찬양과 예배와 중보의 자리로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시며, 당신 자신을 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주님을 어떤 분으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나를 낳으시고 내가 필요한 모든것을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분.
구원자…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분.
전능자…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신분.
연인…….나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뗄수 없을 정도로 상사병이 나신분…

주님을 연인으로 바라보는 것에 얼마나 익숙한지…묻고싶습니다.

매일마다 아무도 없는 은밀한 장소로 나아가 그분께 경배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중보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과연 그런 고백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공부반에 나오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착하고 의롭게 산다고 하더라도… 매일마다 주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과연, 불붙는 연인의 심장으로 주님을 바라볼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듭니다.
아무리 그분께서  애타는 가슴으로 상사병을 앓는 연인처럼 바라보고 계셔도…내 할일만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밥 소르기 목사님의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 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시무시한 힘과 강압적 태도로 위협하는 ‘아마존 여전사’처럼 도끼 든 신부와 결혼하려고 죽으신게 아니다. 집안일만 하고 주님의 들판에 나가 일만하는 신부와 결혼하신것도 아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때문에 죽으셨다.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꿈꾸고 함께 웃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함께 다스릴 아름다운 신부와 혼인하려고 죽으셨다.
…….물론, 우리는 군인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기를 바라신다. 또 우리는 주님의 들판에서 곳간에 곡식을 들이는 성실한 일꾼이다. 하지만 주님은 군대를 소집하고 노동력을 얻으려 죽으신게 아니다. 신부를 위해 죽으셨다…”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 p.267-268)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 모두가…그리운 신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신부처럼 갈급한 영혼으로 주님앞으로 매일마다 달려가,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그분께,내가 달려오기만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시는 그분께
사랑을 바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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