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날 밤,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음을 기쁨으로 알렸습니다.
하늘에 천군, 천사가 주님을 찬송하는 웅장함…정말 아주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마침내 이 땅에 내리워진…역사적인 순간이지요.
목자들은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에게서 받은 표적, 즉, 그리스도를 알아볼수있는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뿐입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마굿간…그곳에 있는 구유, 즉 여물통을 침대삼아 누워있는 아기…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지요.
고귀하신 그리스도가 태어날 장소, 누워계실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말도 안되는, 누추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가장 초라한 장소가
주님이 예비하신,
당신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장소였습니다.
왜 주님은 이런일을 하시는가?
왜 본인의 신분과 모습에 어울리는 곳을 예비하지 않으셨을까?
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시나?
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드는생각은… ‘그 구유가, 그 여물통이 바로 나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속에 살면서도,
내안에 선한것이 없음을 자주 봅니다.
이제는 잘할만도 한데 아직도
불평, 불만, 이기심, 교만…순간순간 내안에 있음을 봅니다.
그때마다 너무나 죄송하고,면목없어서 낙담합니다.
냄새나고, 더럽고, 초라한 그 여물통…그리고 그 안에 누워계시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사랑스런
외아드님…
그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바로 ‘나’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냄새나는 더러운 죄인 한사람이 주님을 모시는 그 순간,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기뻐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한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믿음이 부족한 우리일뿐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내가 찬란한 귀한 보물을 담은 여물통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마치 찬란한 보석함이라도 된것처럼
착각하고 마냥 으쓱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뭔가 잘못되면 자책감, 정죄감에 시달리기 일쑤였지요.
하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여물통이지만…그래도 그안에 누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그렇게…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