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 전략가가 말하길, 우리의 기도의 범위가 우리의 비전과 믿음의 범위라고한 말씀이 기억난다. 즉 한 사람이 세계를 품고 기도한다면, 그 사람의 비전과 믿음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쳐지는 것이고, 만약 우리가 자신과 섬기는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비전과 믿음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특별히 아버지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뜻이 온 세상가운데 이루어지길 말이다. 주님이 이렇게 모든 이들을 품고, 온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해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다면, 여러분들과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만 할까? 아니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단 말인가? R. T. 캔들의 도전이 생각난다. 우리가 성령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안에서 온전한 기쁨을 누리려면 주님 앞에서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성경공부 시간에, 한 자매님이 이렇게 질문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나누어 주셨다. “정말 성령의 충만한 감격을 누리고 싶고, 그로인해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고…..그런데 꼭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해야만 하냐고…..” 너무 귀한 나눔이었다. 부족한 사람은 이렇게 권면해 드렸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면 좋습니다. 기도의 훈련도 되고, 책임감도 느끼고 말입니다. 동시에 무시로 성령님안에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두 가지를 잘 병행하면 휠씬 더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누린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뜻이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만 응답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즐겨들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