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6일 새벽 기도회 말씀

4월 5일 말씀
마가복음 16장 9-11절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는 두 번의 사건을 갖고 있습니다.
일곱 귀신에게서 해방시켜 주신 사건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건입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1. 예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일곱 귀신의 억압으로부터 치료된 해방을 체험했습니다.
일곱 귀신은 문자 그대로 귀신 일곱일 수도 있고, 마귀가 괴롭힐 수 있는 최대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귀신들려 겪은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엄청났을 터인데 그 고통으로부터 치료, 해방을 받았으니 그녀는 얼마나 감사했을 것입니까?

2. 성심성의껏 예수님을 섬긴 여인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 응답받고, 치유받고, 해방받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다른 여인과 함께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은혜를 잊지 않고 자기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섬기며 보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7장 40-4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처럼 자신이 많은 빚을 탕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은 빚을 탕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감사할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죄는 많고, 적고로 비교할 수 없는데 단지 십자가의 고난만큼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고난이 내 죄를 용서해준 사건이라면 어찌 주님을 위해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3. 십자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베드로도 두려워 떠났고, 제자들은 요한 빼놓고 다 도망간 그곳까지 좇아갔습니다.
<마가복음 16장 40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그것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도 따라갑니다.
<47절,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아직 어두운데도 예수님의 무덤까지 가서 돌이 옮기운 것을 봅니다.
<요한복음 20장 1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
아마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싼 향유 사서 준비해 두고 어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름 그대로 막 달라 붙었습니다. (웃음)
<마태복음 27장 61절의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행하여 앉아있었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무덤을 향해 응시하며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십니다.
<요한복음 20장1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까지도 포기할 수 없어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한 예수님께 예수님의 시신을 옮겼냐면서 가르쳐 달라고, 그래서 내가 가져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타합니다.
마리아의 이 뜨거운 사랑은 자신이 체험한 은혜에서 기인하여 십자가 사건을 목격함으로 더해 집니다.
그리고 부활의 목격자, 증언자로 살아 갑니다.
마리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의 여자들 중에 마리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사도행전 2장에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 복음화를 위한 기둥으로 사용받았을 것입니다.
은혜받은 한 여인의 끈질김이 초대교회를 세우는데까지 사용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십자가이며, 누구를 위한 부활입니까?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좇아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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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말씀
마태복음 27:11-23

빌라도.
십자가 사건하면 떠오르는 인물입니다.

1. 빌라도의 선택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없는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 정치 지도자들이 시기로 넘겨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5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당시 로마 황제의 딸이며, 아구스도 황제의 손녀로 막강한 힘을 지닌 아내가 사람을 시켜 전갈을 보냅니다.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이 무죄한 사람이니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빌라도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유대인들은 당신이 예수, 자칭 왕을 풀어주면 로마 황제에게 거역하는 일이라며 압박을 가하고, 아내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고,
예수님을 죽일 수도, 안 죽일 수도, 군중의 말을 들을 수도, 부인의 말을 들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입니다.
요한복음 18장 29, 33, 38절을 보면 빌라도가 관정과 바깥을 들락날락하며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변명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합니다.
진리되신 예수님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비난을 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2. 예수님의 선택
예수님은 전능자로 그 모든 상황에서 빠져나가실 수 있었지만 스스로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자신을 전혀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피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책임을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3. 나의 선택
<마태복음 27장 22절,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여기에 오늘 여러분을 위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예수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의 피하지 않으시고, 저주를 받으시고,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오늘도 내 삶에서 내 곁에 계신데, 날 위해 온갖 고초 받으신 예수님이 계신데 이 분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젊은 선교사가 탄 일본배가 파선해서 1등실 승객에게만 구명조끼가 나누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던 상황에 한 할머니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죽어가던 할머니에게 다가가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할머니대신 내가 죽을 테니 살아서 일본에 가면 나처럼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일본에 꼭 전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선교사는 죽고, 살아 일본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일본 전국을 다니며 자신을 대신해서 죽어준 선교사의 이야기를 하며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날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께 내 삶을 드리며 전파하며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나를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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