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마지막 주

2010년 1월 26-29일 새벽기도회 말씀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A Month to Live)

1월 26일 화요일,
미래를 위해 심는 씨앗. 마태복음 13장 18-23절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우리는 무엇을 심고, 거두는가? 를 생각해 보자.
생명 있는 것을 심는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심는가?
무엇을 거두기 위해 힘쓸 것인가? 어떻게 거둘 것인가? 거두기 위해 알아야 할 윈리가 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농부, 씨앗, 밭은 각각 의미하는 뜻이 있다.
씨앗은 믿음, 소망, 사랑, 선행, 영원한 가치, 즉 한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이 안에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씨 뿌리는 자는 주의 종, 교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뜻한다.
밭은 땅, 토양으로 마음 상태를 뜻한다.
씨앗,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인 밭과 같이 있어야 한다. 변함없는 능력, 생산성을 가진 씨앗이지만 그 씨앗을 담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보기에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씨앗이지만 말씀의 능력이 마음의 상태에 따라 거둬드리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흔한 밭과 밭 사이의 길은 사람들이 왕래가 잦아 매우 단단해 진다. 그래서 씨앗이 뿌려지면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땅 위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금방 발견해서 가져간다. 이런 상태의 마음은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적인 것, 내가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남는 것이 없다. 마음이 단단해져서 열리지 않고 닫혀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완고하다.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 버린다. 말씀의 능력을 아는 마귀는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낚아채 간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
돌밭은 씨앗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뿌리가 나서 어느 정도 자라다가 돌에 부딪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만일 햇빛이 세게 비추면 뿌리가 없어서 금방 죽어버린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고 감동도 있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 따른 삶을 살 것, 희생을 요구하시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한다. 고난, 핍박, 어려움이 오면 잠시 견디지만 힘이 없어서 쉽게 넘어진다. 말씀에 순종해서 따르는 일이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실용주의 (Pragmatism) 라고 말한다. 이 사상은 진리자체 보다는 진리가 주는 유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으로,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진리가 희생을 요구하면 아무리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등을 돌린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지만 각자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니까 떠났다. 그러나 제자들은 진리자체가 생명이고, 영생이기에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영원한 수확을 거두며 남는다.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
씨가 잘 썩고, 뿌리도 잘 성장하는데 주위의 잡초들이 습기를 다 빨아들여서 성장을 멈춘다. 말씀 듣고 순종하며, 어느 정도 성장하던 신자가 말씀에 대한 사랑과 세상, 물질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보니 세상, 물질에 대한 사랑이 더 커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주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경우이다. 염려, 재물, 때문에 막힌다. 이렇게 막히다 보니 인생이 낭비된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
듣고 깨닫는 사람이다. 누가 복음 8장 15절은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더 자세히 이 구절을 설명하고 있다. 말씀에 대해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대해 마음이 열려있다. 그리고 인내로 결실한다고 설명한다. 인내로 지키는 과정이 꼭 필요한데 잘 들었다는 증거는 열매를 맺을 때 알 수 있다. 말씀 들은 대로 행할 때 풍성한, 영원한 수확이 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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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수요일
풍성한 삶. 시편 37:1-7

하나님의 자녀만이 진정한 풍성함이 무엇인지 안다. 주님과 연합된 자는 하나님이 내 오른편에 계심을 알기에, 든든한 백이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예가 있기에 부러운 것이 없다. 그런데 풍성한 삶을 가지고 있는데도 누리지는 못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누릴 수 있나?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남의 형통함 때문에 시기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는 것, 쓸데없이 불평과 시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잃게 한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심, 아버지께서 주신 약속을 잊게 만든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가치 기준에 비추어보면 불평, 불만이 나온다.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자라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소유이며,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넉넉하게 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다.
세상에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두려움은 풍성한 삶을 빼앗아 간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제한된 삶을 바르게 살겠다는 결단이며, 하나님의 뜻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이다. 운전석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라. 내가 운전을 하면 항상 두렵다. 하나님이 훨씬 더 잘 아신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영원토록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영원히 살 천국에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천국이 임했으니 기뻐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니 우리의 삶 자체가 풍성한 삶이 된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영원한 기쁨이 없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니 이 기쁨을 빼앗을 요소가 없고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뻐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우리의 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길’의 히브리어 원어는 ‘순간마다’라는 뜻이다. Step by step,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이루신다.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호와’는 완전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맡길 만 하다. 맡기면 하나님이 감당하시고 나는 풍성한 삶을 누린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지혜로운 말인데, 우리는 그 정도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는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그들이 소망의 인내를 가졌다고 인정한다. 소망이 있으면 인내가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내 존재 가치를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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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목요일
누가복음 12:13-21

열정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현장에서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움 없이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며 살라. 주님이 기대하시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
겸손하게 배우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반성하며 자기 개발을 하며 깨닫고 배운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며 산다. 하늘나라의 부를 사모하는 인생, 성경은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길을 물으러 온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율법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청년은 자기가 다 지켜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는 하늘나라의 부를 발견하지 못하고 땅의 부에 발목 잡혔기에 영원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동생. 예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이루어 주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재판관이냐고 되물으시며, 너희는 탐심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신다. 한 남자가 한 질문인데 예수님은 우리 전체를 향해 복수로 대답하신다. 이 땅에서 부를 추구해서 부자로 사는 것보다 하늘나라에서 부를 추구하다가 영생을 얻고 생명의 풍성함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해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내 인생을 투자하는, 하늘나라의 부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 땅의 부는 하나님이 주기도 하시고, 가져가기도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부에 충족하지 못하고 땅에서도 부자로 물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하늘나라의 부를 사모하는 삶은.
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난다.
말씀을 계속 가까이 하다 보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관으로 변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고 싶다는 가치관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입술로만 살 뿐 삶은 변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부의가치로 변화된다. 부모의 가치가 자녀의 가치로 전승된다.

② 작은 탐심이라도 버려야 한다.
형제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 탐심이다.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부의 가치를 왜곡시키기도 하고, 세상 가치가 너무 좋아서 하늘 나라의 부는 가치를 잃게 된다.

③ 세상에 없는 것이다.
공수래, 공수거,. 이 땅에 쌓는 것은 가져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에 부를 쌓는 지혜가 필요하다.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 물질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면 된다.

④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영원의 풍성함, 영혼의 부유함을 추구하라. 하나님에 대해서 열정이 있나?
캐나다 클론다이크 금광의 한 동굴에서 시체와 함께 편지가 발견되었다. 편지에는 “우리는 이곳에 금이 너무 많아서 계속 금을 파내다가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다 보니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져서 이 많은 금덩이를 두고 우리는 죽어간다. 라고 적혀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금을 적당히 가져다가 팔아 사용하며 살라.

⑤ 청지기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은사, 시간, 물질, 삶에 대해 청지기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부를 추구하는 인생으로 인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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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금요일

마태복음 18: 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당시 유대의 전통으로는 3번까지는 용서하지만 4번째부터는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베드로가 7번이라고 말한 것은 몹시 너그럽게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70 x 7번, 490번을 용서하라고 하신다. 7은 완전수이니 무제한의 용서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우리를 무한히 용서하셨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길 것인가? 유산 중에 가장 값진 유산은 예수님께 용서받은 것이다. 용서를 구해서 용서를 받는 것, 용서해야 할 대상을 용서하는 것이 열매이다.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 달란트는 한 사람이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을 수 있는 액수이다. 현재시가로 만 달란트는 6억불이다. 이러한 금액을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하면 죽게 생겼으니 참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돈을 주었던 주인은 단지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서 한마디로 모두 용서해준다. 6억불을… forgive와 forget은 어근이 같다. 그 뜻은 기억상실, 완전히 빚에 대해 잊는다는 뜻이다.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백 데나리온은 만 달란트의 백만분의 일의 가치이다. 용서받을 수 있는 액수이다. 그런데 종은 빚진 사람의 목을 잡는다. 원문의 표현은 더 심해서 모가지를 비틀어 잡는다는 뜻이다. Mercy, 불쌍히 여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보라. 왜 달리셨나?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려고, 나의 허물, 살인, 도적질, 모든 악, 죄를 짊어지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 It is done.”라고 말씀하셨다. 빚을 다 탕감해 주셨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어서 갚으셨다. 예수님 앞에 나갈 때 내 죄가 아무리 주홍빛같이 붉어도 용서를 구하면 받게 되어 있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십자가 믿지 않는 것이다. 용서받는 것은 귀한 유산이다.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내가 너를 은혜로, 조건 없이, 용서해 주었으니 그렇게 용서해라. 우리는 용서받은 삶과 용서하는 삶, 두 가지의 삶을 병행해야 한다. Christians are not perfect, but forgiven. 도저히 탕감 받을 수 없는 용서를 받았으니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오히려 비 신앙인들은 잘 잊어버리고, 용서하며 사는데 우리는 왜 내려놓지 못하고 용서에 인색하게 살아가는가? 본문의 종처럼 자신이 금방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듯이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면 된다.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윌링턴이라는 장군 밑에 문젯거리 병사가 있었다. 징계도 해 보고, 감옥에도 보내보고, 잘못할 때마다 타일러도 보고, 다 했는데도 상태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장군은 그 병사를 처형시키기로 한다. 처형장에서 병사의 친구가 장군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한다. “장군님, 처형시키지 마십시오.” “나는 이 병사를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 그러나 이 병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처형시키는 수밖에 없다.” “장군님, 다 해보셨지만 용서는 해 보지 않으셨습니다. 용서해 보십시오.” 그래서 장군은 병사를 용서했고, 이후에 용서의 힘으로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 중에 누구도 율법으로 용서받은 사람이 없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율법을 잣대 삼아 그들을 대한다. 은혜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보고, 대해야 한다. 주님의 파격적인 유산, 용서받은 것, 용서의 은총을 깨닫고 누리며, 발휘하며 살라.

1월 30일 토요일, 베드로 전서 4장 7 – 11

오늘 부르신 찬송가 315장에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혀에 생긴병으로 수술 전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게 되었을 때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내게 남은 마지막 한 달에 우리는 거룩한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7절 올바른 정신, 근신하여 기도하라.
육체적, 세상적 일들보다 영적인 삶을 더욱 영위하여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기에 근신하여 기도하란 것입니다.

2) 8절 사도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사랑”하길 권고하였습니다.
내 생애의 마지막 한 달이라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가족과 교인, 이웃을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더 사랑했었는가?
뜨겁게란 의미는 운동선수가 전력을 다해 승부하듯이 그러한 열심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말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입니다.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더욱 사랑하여야 겠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수 없다”란 것은 감정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그런 감정보다는 의지적으로 끝까지 멈추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여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을 하다가도 허물을 보면 그 사랑이 식는데, 이에 8절 “죄를 덮느니라”란 것을 보면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설교 중 내가 남길 유산 중 하나는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가이고 또한 내가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3) 9절 타인을 대접하고
누구를 부지중에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25장은 심판장이라고도 합니다. 양은 부지중에 도움을 주었기에 구원에 이르나 염소는 책망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듯 타인을 대접해야 합니다.

4) 10절, 뜨겁게 연계하여 내가 은사를 받은 대로 열심으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한가지 이상의 은사가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각자 실행한 은사대로..
성경의 청지기란 의미는 종말론적 청지기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무엇을 했는가?”라며 주님께서 결산하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가족, 건강 등 생애에 대한 결산을 준비하며 삶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서 공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발견하고 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정을 갖지 않고 살고 후에 주님을 만나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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