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4일 새벽 예배

찬송: 새 212장 (통 347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본문 말씀: 시편 12편 1절에서 12절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7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오늘의 말씀

오늘 새벽 가정 예배 시에 내려 주신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정말 일평생 자기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고, 예배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 때문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영어성경에는, “All His benefits!” 하나님의 모든 은택과 모든 축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은택, 축복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 정말 주의 은택이 아니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오늘도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을 살 수 있게 해 준 소위 일반 은총의 자연
환경과, 양식과, 조건들이 다 하나님의 은택인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나와 나의 가족을 살게 해 주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택인 것임을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히 다 셀 수 없는 모든 은택들 가운데 가장 큰 은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영원토록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큰 은택인데, 우리는 날마다 그 은택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사해야 하는 은택인데, 바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은택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편 103:3-4절).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에 우리의 “모든 죄” 를 다 용서받게 됩니다. 모든 죄라고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죄일까요? 종종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면 법정에서 죄수가 죄의 판결을 받을 때 두 세 가지 죄의 처벌도 큰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정에선 죄의 종류나, 숫자나, 규모는 없습니다. 오직 죄의 유무 곧 죄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죄를 한 번도 짖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선 한가지의 죄도 어마어마한 죄값이 치러져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교만과 탐심으로 먹음으로서 인류를 죄로 오염시켰습니다. 영원히 죽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한 가지의 죄도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태어난 우리 사람이 어디 한 가지의 죄만 짓겠습니까? 시편 40편 12절에 보시면,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죄는 다 셀 수 없는 나의 머리털보다 더 많습니다. 한 가지 죄의 중량도 그렇게 무서울진대 다 셀 수 없는 그 많은 “모든 죄”는 어느 정도일까요?

성경은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법정에서 범죄 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 죄수들을 많이 보았지요? 그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사람은 죽음 후에 하늘 법정에 서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복음이 있습니다. 본문의 10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전에 어느 죄수는 387년 형을 받았는데, 그런 죄수나 사형수에게 만약 그들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죄를 따라 그대로 갚지 않고, 용서해 주면 그게 얼마나 큰 복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 보다 더 많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든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 아니하셨다니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은택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따라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벌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따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친히 갚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되었는데 바로 12절 말씀처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여러분! 동이 서에서 얼마나 멉니까? 동서는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자기의 죽음으로, 피 값으로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한 문학가가 죽으면서 남긴 말입니다. “나는 평생 기독교인들을 미워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저들이 몹시 부럽다. 저들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용서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기록한 다윗은 시편 32편 1절에서 말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서 “복” 이란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행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까? 본문의 2절과 3절 말씀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10절 말씀에선,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와 저 천국에서 영원히 감사해야 할, 행복해야 할 이유는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은택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그 은택을 잊지말고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나를 억만죄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은택을 잊지 않고 더욱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사실 앞에서 담대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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