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7일 새벽 예배

찬송: 새 369장 (통 487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본문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에서 10절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오늘의 말씀

오늘 토요일 새벽 가정 예배와 돌아오는 월요일 새벽 가정 예배 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은혜와 도전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주후 50년경에 쓰여진 편지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도시는 중요한 무역 도시였습니다. 약 20만 내 외의 인구를 가진 도시였어요. 그리고 그 곳에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아주 좋은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말씀의 2절에서,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인해 “항상 감사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7절에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8절에서도,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인정하고 칭찬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구체적으로 당시 모든 교회들에게 어떤 일에 본이 된 것입니까?

2절 말씀대로,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바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첫 째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고 칭찬받게 된 것은 “믿음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금요 예배 시에도 믿음에 관한 말씀을 전했지만 “믿음”이란 것은 실로 귀한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또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어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반드시 행동이 뒤따른 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은 우리 마음으로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품은 믿음이 진정한 것이라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이 “믿음과 행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따로 국밥은 있어도 믿음 따로 행함 따로는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합니다. 그 장 안에는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모세, 여호수아, 갈렙, 라합 등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믿음과 행함이 함께 따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믿음에 행함이 따라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계했지만 영국의 유명한 학자요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 데 그 소가 그 귀한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습니다. 농부는 송아지 두 마리가 태어난 것이 너무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농부는 너무 감사해서 당장 자기 부인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송아지 새끼가 두 마리야. 한 마리는 무조건 주님의 것으로 믿고 주님께 드립시다. 그의 아내도 감사해서 아멘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만 죽었습니다. 죽은 송아지를 본 이 농부는 울상이 되어 방안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 일 났어! 큰 일 났다고!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님께 드릴 송아지가 죽었단 말이오.”
이 농부는 처음엔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드려야 할 때는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그 믿음에 행함이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행함이 뒤따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믿음의 역사 즉 믿음의 행함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럼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가 어떻게 증명되고 있습니까?

먼저 본문말씀의 9절을 보시면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엔 우상들이 득실거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으로 가득했습니다. 우상숭배는 그들의 문화였고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럼, 우상이 무엇입니까? 지난 금요일 가정 예배 시에 묵상한 말씀처럼 명예이든, 물질이든, 자녀이든, 건강이든 하나님보다 아니면 하나님과 같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내 마음을 뺏는다면 우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우상들을 다 버렸습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물질이나 자녀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상시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녀나, 물질이나, 건강이나, 명예나 그런 것들로 인해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우상시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그런 것들을 주신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또한, 6절 말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많은 환난가운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믿음의 역사가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모습에서 나타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들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았습니다. 그 사실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말씀 또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새벽 가정 예배 시에 전해지는 말씀도 내게 주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사모함과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이 완전히 나를 다스리고 지배할 때까지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마음이 박살이 나서 말씀에 의하여 다시 내 인격이 빚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까지 믿었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서,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으므로 실천하므로 예수님과 사도바울을 본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8절에 보니까 저들의 그런 믿음의 역사가,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 중앙일보에서 어느 분이 쓴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입니다. “세상은 교회에 거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교회가 그들이 믿는 그대로 행하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단지 복음의 상식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배당의 크기, 신자의 숫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외적성장 곧 교회 건물의 크기와 신도의 숫자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내적성장 곧 성도가 믿는 그대로 행하는 것 즉 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로 그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인해 예수님을 본받는 자리까지 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우스베이 지역에서 토랜스선한목자교회는 교회 건물이 크다, 신도 숫자가 많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토랜스 선한목자교회는 믿는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믿음의 실천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