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일 새벽 예배

찬송: 새149장(통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본문 말씀: 요한복음 13장 1절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늘의 말씀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의 넷째 날인 목요일입니다. 이 고난 주간의 넷째 날에 대한 기록이 있는 본문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바로 전날 밤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겐 이제 제자들을 떠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하나님 나라로 다시 올라가실 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제자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 우리 예수님의 마음도 몹시 아프셨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본문의 1절 말씀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럼, 여기서 “자기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겁니까? 소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삼 년 동안 따라다닌 수십 명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 자기 자녀들을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선 자기 사람들 곧 자기 자녀들, 자기 백성들, 자기 양들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또한, 자기 자녀에 대한 그 애착이 얼마나 강합니까? 누가 자기 자녀에 대한 애착과 사랑과 희생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이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되 했을 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언제부터의 예수님의 자기 자녀가 됐느냐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3장 1절과 요한복음 1장 1절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거기서 “말씀”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계신 분이시란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러니까 주님께선 창세전에 곧 이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여러분을 자기 사람들로 택하여 주셨다란 겁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과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자기 사람, 자기 자녀로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창세 전부터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 저 천국에 가는 순간까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관심과 애정은 식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 사람이고, 자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선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의 자녀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겠습니까? 바로 주님께서 자기 자녀인 여러분을 절대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자기 자녀인 여러분을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의미심장한 말은 “세상”이란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선 그 세상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도 영접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9장 39절에선,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죄로 타락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말합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 죄에 오염된 세상을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 지경일 수가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더 핑크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지만 죄는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셨지만 인간의 죄가 들어와서 바로 지금의 “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의 죄로 망쳐놓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 그 죄로 물든 세상, 죄로 타락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인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다란 것입니다. 이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을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셨다란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이 말씀은 세상에 있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기 위해, 다 덮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해는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덮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은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속량이란 말은 예수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기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덮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는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가롯 유다의 더러운 발까지 씻어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같으면 여러분을 팔아넘기려고 하는, 배은망덕한, 배반자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선 그런 배신자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본문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말씀은 “끝까지 사랑하신다”라는 겁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의 이 “끝까지”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까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위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창세 전부터 자기 사람들을 선택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반역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을 돌렸고, 죄를 범하며 살아갔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선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겁니다.

우리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모르시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모진 고통을 다 당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살려야 된다는 그 한 가지 생각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서 지난 2008년도에 지진이 났을 때, 한 여인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무너지는 건물 잔여 더미가 자기의 아이를 해치지 못하도록 아이의 지붕이 되 주신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벽돌과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그 아기를 덮으려고 하니까 엄마가 지붕이 돼서 그 모든 벽돌 더미들 그리고 건물의 부스러지는 철근 더미들을 막았습니다. “어머니의 지붕”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여인은 젖을 먹이고 있던 자신의 어린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척추 뼈가 부러져서 끝내는 죽게 됩니다. 이 아이를 구해낸 구조대가 들어갔을 때 이 어머니의 휴대폰 액정에는 이런 글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가야. 네가 만약 산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주길…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신의 척추뼈가 부러지더라도 아이를 살려내기 위해서 그 쏟아지는 건물의 잔여들을 다 지탱하는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것만은 영원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희생과 사랑입니다. 죄인인 나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입니다. 부모 된 우리는 자녀를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자녀를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우리는 그 일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죄인인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쏟아 부어지는 여러분의 죄에 대한 진노를, 심판을, 저주를 자기가 지붕이 되셔서 다 막아주셨어습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이것만은 기억하여라. 기념하여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을 살아가실 때 그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나를 향한 예수님 십자가의 끝없는 사랑에 더욱 감사, 감격, 감동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가 시작되기까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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