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3일 새벽 예배

찬송: 새 149장 (통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본문 말씀: 마태복음 27장 62절에서 66절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오늘의 말씀

오늘은 고난주간의 여섯째 날인 토요일입니다. 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장사 되어있는 날입니다. 본문의 59절 말씀에서,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라고 했는데 이 “시체”는 바로 예수님의 시체를 말합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몸이 시체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죄에 대한 심판이고 저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성삼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시체에 대하여 무한 감사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악과 타락으로 말미암은 심판인데 예수님께서 그 죽음 곧 심판과 저주의 자리에 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죽음이 아닌 바로 십자가 고통의 죽음으로 말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시체가 되신 것입니까? 누구 때문에 예수님이 죄의 결말인 시체가 되신 것입니까? 바로 나 때문입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나를 높이시려고, 나를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시려고 예수님께서 시체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63절 말씀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를 찾아와서 예수님이 장사지낸 무덤을 병정들로 하여금 굳게 지켜달라고 요청합니다. 혹시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은 시체를 훔쳐간 후 예수의 주장대로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거짓 소식을 전하고, 백성들을 이전보다 더 크게 선동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모든 병정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굳게 지킨다 한들 어찌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저들의 주장대로 제자들이 정말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가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가정해 보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어느 바보가 자기가 훔쳐 간 시체의 사실을 알면서 그 시체가 살아있다는 거짓 주장에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말입니다.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며 순교의 자리까지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66절 말씀에서,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날 곧 오늘의 주일 새벽에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내일 아침 교회에 모여서 그 예수님의 부활 주일 예배를 기념하게 됩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의 교회에서 미국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강사 목사님과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미국 목사님이 목사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님들은 예배 전에 예배당 밖에서 참 화기애애하네요! 서로 반가워하고, 웃고, 껴안고, 악수하고, 왁작지껄 시끌버끌하는데 예배당 안에 들어와서 예배만 시작되면 얼굴들이 진지해지고, 분위기가 무겁고,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 왜 그러죠?” 그때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라 머쓱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해서인 것 같네요!” 그러자 미국 강사 목사님이, “아니!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것을 모르고 있나조죠?”하며 웃었다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계속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신 것처럼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소망과 위로와 평강과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감동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과연 예수님은 아직까지 무덤에 계신지, 아니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는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습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하는 가운데 로마 카톨릭에 거센 공격에 좌절하고, 큰 낙심 가운데 빠져있을 때 그의 아내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루터의 서재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놀란 루터가 아내에게, “아니 누가 죽었오? 왠 상복을 입고 있는 거요?” 그러나 루터의 아내는, “예! 하나님이 죽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좌절하고, 낙심에 빠진 것 같아서요!” 그때 정신이 바짝 난 루터는 무릎을 치고 일어나면서, “아니다! 주님은 살아계시다!” 그때 종교개혁운동의 박차를 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로 염려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건강입니까? 코로나입니까? 자녀입니까? 사업입니까? 미래입니까? 예수님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갇히신 것처럼 행동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이 사실을 알리는 부활 주일 예배에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무덤에 갇혀있는 나의 모든 염려와 문제와 근심과 두려움이 내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밀려오는 소망과 능력과 확신과 평강과 승리로 활짝 열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내일 부활 주일 예배를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올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능력과 평안과 소망과 감사를 누리기 위해 속히 대면예배가 시작되기까지 온라인 생방송 예배와 새벽 가정예배와 금요 가정 예배에 주력하게 하소서
-코로나 전염병이 속히 종식되고 교회 모임과, 일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선한목자 교우들을 지켜주소서.
-교회의 영적 리더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2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부모님과 교회가 합력하여 말씀과 예배와 신앙과 기도에 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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