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7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8절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40일 금식기도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기간동안에 기도가 주는 몇가지 원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의 비유는 “과부와 재판장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왜 이 비유를 말씀해 주신 목적이 본문의 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겁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분을 낙심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어느 날 사탄이 자기가 인간들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한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상품들 가운데는 걱정, 두려움, 욕망, 슬픔 등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의 한 모퉁에, “절대 세일 하지 않음”이란 상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왜 이 상품은 세일하지 않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탄이 대답합니다. “다른 상품들은 충분한 여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물건만큼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가장 유용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건이 없이는 나는 다른 사람들 마음 속 깊이 들어가서 작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 물건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그렇습니다. 사탄이 대답합니다. “이 물건의 이름은 바로 “낙심”이다.

정말이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낙심”으로 무너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선 낙심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비유로서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그렇습니다. 바로 주를 신뢰하는 기도가 낙심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의 중요성을 비유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한 재판장이 등장합니다. 이 재판장은 좋은 재판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선 불의한 재판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안 믿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사정에 처해 있는 과부가 등장하면서 이 재판장을 찾아가서 자기가 처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또 호소합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이 재판장이 여인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다가는 계속해서 자기를 찾아와서 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견디다 못해 과부의 사정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본문의 6절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본문말씀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선 불의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차갑고, 매정한 재판장과 온 세상 천하보다도 한 영혼의 가치를 더욱 존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과 대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처럼 불의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매정한 재판장도 과부의 사정을 들어주는데 사람을 사랑하시고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그 분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멸시할 수 있겠는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선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과부”를 비유로 사용하셨을까요? 왜냐면 예수님 당시 과부는 가장 불쌍하고 가장 무력한 인간을 대표했던 계층입니다. 그래서 “과부”란 말은 거의 “저주”라는 동일 명사로 통하고 있었던 그러한 때였습니다. 지금과는 천지 차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과부된 사람은 재혼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되면 그의 삶에 대한 아무런 사회적 보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여인의 운명이 마치 물건처럼 사고파는 상태였는데 더군다나 과부가 된다는 것은 가장 비극적인 상태, 가장 곤란한 상태, 가장 고독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구제를 말 할 때는 꼭 과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 된 약자를 말 할 때도 과부가 언급되고, 하나님께서 약자를 위하신다고 말씀하실 때에도 과부와 고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과부의 고통과 눈물뿐만이 아니라 동일한 고통, 동일한 고독, 동일한 눈물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 믿고 사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한과 눈물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과부”를 비유에서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고통과 눈물과 한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께선 오늘의 비유에서 대답을 주고 계십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의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의 중심 구절입니다. 주님께선 그냥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항상 기도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항상”이란 말이 기도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문제에 접했는데 만약 포기한다면 기도하겠습니까? 정말 포기를 안했으니까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본문의 1절 말씀이 영어성경에서도, “Always pray and not give up!”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복음 성가 중, ♬♪기도 할 수 있는 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절망 하십니까♪♬ 바로 예수님께선 이 사실을 오늘의 비유 말씀에서 알려주시는 게 아닐까요? 불의한 재판장도,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도 과부의 사정을 들어주는데 여러분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천지차이와 같은 그 불의한 재판장과 대조하셨겠습니까? 그만큼 하늘 아버지께선 자녀이신 우리의 사정을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기도 응답 받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서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은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가 하도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 하고 또 호소하니까 오늘 본문의 5절 말씀에서처럼, “저 과부가 나를 너무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지 않다간 늘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니 안 들어줄 수 가없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과부가 한두 번만 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면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들어줬겠습니까? 계속 번거롭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집요하게 매달렸으니까 들어준 게 아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그 점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두 번 기도했는데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기도하기를 포기한다면 사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고 기도의 의미를 모르고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빙고 게임을 하듯 맞으면 “할렐루야!”이고 안 맞으면 한 숨을 내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가 그런 가벼운 기도가 아닌 보다 차원 높은, 보다 성숙하고 깊은 기도가 되도록 때때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보시면서도 그 고통의 해결을 유보시키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선 현재 여러분이 급급해 하는 기도의 응답보다 성숙한 기도자가 되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기도하는 것,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응답이 유보되어도 축복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기도를 포기하는 것보다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몇 만 배 더 축복인 것입니다.

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5만 번 기도 응답이란 그의 책에서 자신이 임종 시에 기도를 했는데 바로 세 명의 친구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다 응답 받았는데 그 친구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기도만 응답받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지뮬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때 그가 임종하기 직전에 그 세 명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세 친구는 뮬러에게, “이보게 친구, 우리가 예수를 믿겠네! 이 다음에 천국에서 보세나!” 반드시 기도 응답은 받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내가 바라는 응답 보다 더 선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본문의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에서,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도전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응답이 혹시 지연되고 있고, 그래서 나를 둘러싼 상황도 어둡고, 나는 계속 가슴앓이를 하고 있고,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침내 내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단 한 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도 너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라고 도전하십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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