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4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시편 90장 10절에서 17절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오늘 본문의 3절 말씀에서 모든 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언젠가는 다 티끌로 돌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4절 말씀에 보니까 사람이 90년 100년 1000년을 살아도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다고 합니다. 5절 말씀에선, 인생은 잠깐 자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절 말씀에선,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그 또한 신속히 가고 날아간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금년도 9월이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잠깐 자는 것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의 12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우리의 날 수를 계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나를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내게 남겨진 이 땅에서의 인생이 언제까지 보장된 것이 아니고 그 또한 신속하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세월을 계수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는 세월을 아낄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지막 유언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왕은 자기를 치료했던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만이라고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제가 가진 이 나라의 모든 재산 가운데 절반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잠시의 시간을 내 모든 소유의 절반과 바꾸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귀중한 것입니다. 그럼 이 귀중한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사람들이 임종 시에 후회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살아온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접어둔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을 살아오면서 제일 아쉬운 것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많이 나온 대답은, ”더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대답은,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많이 나온 대답은, ”이웃에게 더 선행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뒤를 돌아봤을 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은 더 중요한 것에 치우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노후준비가 더 빨라졌고 더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노후준비는 45세부터라고 할 정도입니다. 노후준비를 잘 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그러나 짧은 노후 준비에 힘쓰는 것만큼 성도는 영원한 내세를 더 잘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지혜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본문 말씀에서, 모세는 짧고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만족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14절 말씀에서 모세는 기도하기를,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그러니까 모세는 우리 인생 여정이 비록 살 같이 빠르고, 한 순간 같지만 오늘을 만족하고, 즐겁고, 기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늘 “조금만 더”하면서 조금만 더 가지면, 조금만 더 나아지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공허함만, 허무함만 남을 뿐입니다. 다시 14절을 보시면,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여기서 “인자”란 말은 “조건 없는 사랑” “신실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하게.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은 사랑의 예수님, 신실하신 예수님을 소유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우리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의 인자하심으로 내 죄가 다 사함을 받고 천국 가는 사실 하나로만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영어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Yesterday is history! 어제는 과거의 역사이다. Tomorrow is mystery 내일은 미스터리다. 내일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았으니까! Today is a gift of God!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영어로 선물을 Present 라고 합니다. 이 “Present”의 또 다른 의미는 “현재”입니다. “Present” 그러니까 현재가, Present인 것입니다. 오늘이 하나님의 선물이니까 오늘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천국 가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미국에서 사는 것으로, 오늘 내가 살아있는 것으로 오늘을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확실하게 주어진 것은 오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불평하기엔, 원망하기엔, 누구를 미워하기엔 너무 짧습 니다. 그러니 오늘 모세의 기도처럼 오늘을 만족할 수 있도록, 즐겁고,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보람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 남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17절 말씀에서 모세는,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 수고의 결과에 보람을 얻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헛되지 않고 남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 말씀에선, “자기에게 주셨던 인생의 보람을 자기 자손들에게도 남길 수 있는 은총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가 얻게 된 수고의 보람을 자기 자손들에게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난 후에 내가 남길 수 있는 곧 내가 반드시 남겨야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때 허무를 남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죽을 때 가치를 남긴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람 된 삶을, 가치 있는 삶을, 영원한 삶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 교우 여러분! 지금의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에게 귀한 선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이전보다도 인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