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6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시편 133편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도의 교제”

이번 펜데믹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우리 모두는 교우들과 함께 만나서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의 시기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준비와 마음가짐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옥에 갇혀있으면서도 마음과 기도로 옥밖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빌 1:1-11).

오늘 이 아침에는 우리가 앞으로 가지게 될 성도의 교제를 사모하고 준비할 수 있는 성도의 교제의 의미를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133편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화목한 형제처럼, 화목한 가정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처럼.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How good and pleasant” 감탄사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말씀은 시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데 당신이 무엇 무엇을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감탄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님도 자기의 자녀들이,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할 때 얼마나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울까요? 반면에 자녀들이, 형제들이 분열하여, 서로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면 보기에 어찌 그리 가슴 아프고 민망할까요?

여기 시편 133편의 제목을 보면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지파마다 차지할 땅이 생기면서 화목한 모습이 많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약화되고 사라진 화목한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화목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선 이 땅에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께선 화목의 영이십니다. 삼위일체의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이십니다. 완전한 하나이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선 그 하나 되심을 교회 공동체에 나누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격리 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예수님과 연합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여러분들을 예수님의 한 가족으로, 예수님의 한 몸으로, 예수님의 한 교회 공동체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영원히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 예수님 안에서 영원히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 연합되어 한 몸 된 교회 안에서 동거하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볼 때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우리 모두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격리되고,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하시려고, 연합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달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절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을 때 십자가에서 수직으로는 예수님의 한 손은 하나님의 손을 잡으셨고 다른 한 손을 우리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수평으로는 예수님의 한 손은 나의 손을 잡으셨고 다른 한 손은 남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양 손을 잡으신 예수님께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흘려주시고, 긍휼과 사랑의 심장이 파열되시고, “다 이루었다!”라를 외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여러분과 하나님은 화목의 관계가, 하나 된 관계가 되었고, 같은 예수를 믿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와 남의 관계도 화목의 관계가, 하나 된 관계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 된 관계, 연합 된 관계, 화목 된 관계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 하나 된 교회, 예수 안에서, 교회 안에서,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도의 연합은, 형제자매의, 교회의 하나 됨은 교회에 있어,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하나 됨의 본질을 지켜나갈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에 있어 가장 큰 자산은, 본질은, 세상이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도 낼 수 없는 축복은 지금 여기 바로 교회의 연합 된 관계, 하나 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3절 말씀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도의 하나 됨, 교회의 하나 됨은 사람이 힘써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절대로 삼위일체의 하나 됨처럼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됨, 성도들, 형제자매들의 영원한 하나 됨을 만들어낼 수 가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이 택하시고, 성자하나님이 피로 구속하시고,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만이 하나 됨을 만들어 주신 겁니다. 바로 그 하나 됨을 우리가 깨닫고 힘써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 힘써 지켜나가는 이 거룩한 사역을 위해 본문의 2절 말씀에서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133:2)” 여기서 보배로운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머리에 있는 기름이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려가듯이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는 오직 성령으로만 그 하나 됨을 지켜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스가랴서 4장 6절 말씀에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성령으로)되느니라”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게 해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 됨을 지켜나가십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5장 22절 말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니까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그 아홉 가지의 열매들을…, 예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열매들…, 사랑…, 서로 사랑함으로, 희락…, 주 안에서 기뻐함으로, 화평…, 서로 화평함으로, 오래 참음…, 서로 오래 참음으로, 자비…, 서로 자비를 베풀어 줌으로, 양선…, 서로 선을 베풀어 줌으로, 충성…, 서로 충성함으로, 온유… 서로 감정을 잘 조절함으로, 절제…, 언행 및 감정의 절제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분은 말하기를, “나는 성격이 오래 참지 못해요!” 그런데 오래 참음이란 성령의 열매는 내가 어머니 배속에서 가지고 태어난…, 아님 성장하면서 환경적인 요인으로 형성 된 성격이 아닙니다. 오래 참음의 열매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맺게 해주시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래 참음의 열매를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구하고, 사모하면 오래 참음 외 나머지 여덟 가지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을 내가 다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예수님 몸의 장성한 분량까지 나아갈 수 가 있을까요? 본문의 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받을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붓는 모습을 아론의 수염에 기름이 넘쳐흐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자손들이 하나님께 그만큼 특별한 직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133편에서 다윗은 바로 이런 비유를 들어서 형제간의 화목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받아서 감당하는 것에 비유해서 형제처럼 하나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아주 충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을 보시면 사도바울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만인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로 돌리셨고 그렇게 하나님과 화목 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 화목의 직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자에게 화목의 복음을 전해서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사역이고, 두 번째는,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 됨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화목의 복음 안에서 서로 사랑할 것과, 용서할 것과, 오래 참을 것과, 용납 할 것과 등등의 화목을 도모하는 사역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 분열시키는, 사이를 가르는 사람

2) 분열시키지도, 사이를 가르지도 않고 또 화목하게 하지도 않는 사람

3) 화목하게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성령께서 위탁하신 화목의 직분을, 성령께서 맺게 해 주시는 아홉 가지 열매들로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YMCA의 책임자로서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중국의 대표자들의 자문위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무려 8백 마일이나 되는 일본군의 점령지를 걸어서 탈출했던 쿠는 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는 인종과 피부색과 언어, 풍습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세계 방방곡곡에서 표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서로의 관점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 안에서는, 성령의 역사로, 성령의 열매로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그 하나를 경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3절 말씀에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이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으니 곧 영생이로다”

형제 연합은 선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한 높은 산 헐몬의 이슬이 산과 들에 내려 초목을 소성시키듯 형제가 연합하는 모습은 주님의 복을 불러 옵니다. 형제연합을 통한 새벽이슬 같은 잔잔한 평화의 은혜가 백합화 같이 아름답게 꽃피워나는 은혜의 역사가 일으킬 것이고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호세아서 14장 5절과 6절 말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그렇습니다. 새벽이슬은 하나님의 복을 상징합니다. 형제 연합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복을 명하셨습니다. 복을 명하시되 영생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슬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신선하게 하고 활력이 넘치게 합니다. 그런데 형제간의 화목한 모습이 바로 이슬처럼 서로에게 원기를 주고 활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서로의 삶에 활력과 기쁨을 주면 하나님께서도 영원한 생명의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합력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서로에게 활력과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바라옵기는 지금의 펜데믹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우리가 다시 모일 때 우리 교회 공동체가운데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성도간의 연합을 통한 축복과 기쁨,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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