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2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에스겔 14장 12절에서 23절

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3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 다니게 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하여 사람이 그 짐승 때문에 능히 다니지 못하게 한다 하자
16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가령 내가 칼이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령하기를 칼아 그 땅에 돌아다니라 하고 내가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18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9 가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노를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22 그러나 그 가운데에 피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23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남 왕국 유다 곧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하나님의 선지자인 에스겔에게 주신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이 우상숭배로 더렵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정말 오래 동안 참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결국 수 백 년 동안 경고하신 징계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완고하고 돌아오지 않으니까 결국 징계를 통하여 정신 차리게 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드시는 것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적인 범죄는 우상숭배였습니다. 에스겔서 48장 전체에 걸쳐 우상이란 단어가 39번이 나옵니다. 이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산골짜기 마다 우상들은 섬기는 신당들로 가득했습니다. 혹시 우상 숭배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심각한, 무서운 우상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내 마음 속에 있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선 더 이상 구약에서 사람들이 금, 동, 나무, 돌 등로 만든 우상을 말하지 않고 바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지적한 것을 보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우상을 제조하는 공장이다.”

현대인들이 좋아하 6″P”가 있습니다. 영어로 여섯 개의 P자로 시작하는 단어입니다. Pleasure(쾌락),
Possession(재물), Position(지위), People(인기), Power(능력), Physical
health(건강)입니다. 물론 이것들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절제되지 않으면, 욕심이 되면 쉽게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에…, 만약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이 자리 잡을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제 본문의 1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의 고질병인 우상숭배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을 학대하는 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으로 인해 불가피한 징계를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그 죄악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세 사람을 언급하십니다. 20절에서 똑같이 반복하십니다. 이 세 사람은 바로 노아와 다니엘과 욥입니다.

그럼, 죄악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 세 사람을 거듭 언급하셨을까요?

첫 번째로,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당시가 이 세 사람이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에스겔 선지자 당시의 백성들처럼 죄를 범하지 않은 의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노아입니다. 창세기 6장을 보시면 노아 당시의 세상은 죄악이 가득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이나 걸려 방주를 지었습니다. 1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죄악 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며 꿋꿋이 120년 동안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 방주를 완성한 것입니다.

또 다니엘을 어떻습니까? 다니엘은 신앙의 정절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청년시절에 바벨론의 왕의 호의를 입어 왕이 내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있었는데 왕의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왕의 음식을 거절하면 죽음인데도…,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거절한 다니엘…, 그런 그가 당대의 바벨론의 최고 신하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를 질투한 신하들이 왕을 꾀어 다니엘이 하루 세 번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니엘을 죽이려고 왕에게 가서 한 달 동안 왕 외에 그 누구에게도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지라는 어명을 받아냅니다. 그 사실을 안 다니엘은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고 우상숭배하며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죽겠다는 믿음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에게 하루 세 번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그를 살려내십니다. 바벨론 왕이 다니엘의 그런 믿음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욥은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욥을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고,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당시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했습니다. 욥이 얼마나 죄를 멀리한 삶을 살았냐면 이제 명절이 되어 욥의 자녀들이 모여서 잔치를 열면 잔치가 끝난 다음에 욥이 자녀들 명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자녀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의 우려때문이었습니다. 늘 그와 같이 우상숭배를 포함한 모든 죄를 멀리하려고 몸부림쳤던 의인 욥…, 성경은 욥의 행사가 항상 그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까닭 없는 시련이 임합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사고로 죽습니다. 모든 재산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습니다. 자기 온 몸에 종기가 돋아 너무 가려워 기왓장으로 자기의 온 몸을 긁습니다. 참다못한 아내는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라고 저주까지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욥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고난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입으로 범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고난가운데 연단을 받아 정금 같은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도 신앙의 귀감으로 칭송을 받게 됩니다. 노아, 다니엘, 욥…, 정말 대단한 신앙인들입니다. 본인들이 처했던 당시 극도로 타락한 세대 속에서도, 극도의 환난 중에서도 의로움을 지킨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께선 노아와 다니엘과 욥을 언급하시면서 본문 말씀의 배경인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타락한 세대 속에서, 환난 중에서 노아와 다니엘과 욥처럼 신앙의 정절을 더럽히지 않기를 원하셨을 겁니다.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셨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악을 거론하시면서 노아와 다니엘과 욥을 언급하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타락하여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14절과 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시면서,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노아와 다니엘과 욥은 자기들의 믿음과 의로움을 생명은 건지겠으나 너희들은 건지지 못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과 같은 역대 의인들이 에스겔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에 거 한다 할지라도 그 세 사람은 자기들의 믿음과 의로움으로 자기들만 살게 될 뿐이지 그 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맹세코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도로…,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나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은, 인간들은 여전히 죄로 더 오염돼있습니다. 더 타락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노아, 다니엘, 욥은커녕 성경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영웅들이 총집합해서 온다 해도 자기들은 구원받을지 모르나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에겐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세상의 소망이 있습니다. 인류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 보좌위에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죄악 된 세상에 죄인인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주님은 죄도 모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이야말로 구원받을 필요가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인간이십니다. 그냥 당신만 하늘로 승천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죄인이 뭐가 그렇게 귀하다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가 받을 죄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자기는 죽고 우리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의로운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는 당시의 노아와 다니엘과 욥보다 더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실 앞에서 나의 힘과 의와 노력이 아닌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힘을 입어 우리의 삶이 우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고, 섬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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