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3일 새벽 예배

본문 말씀: 잠언서 3장 27절에서 35절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오늘 본문말씀에선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지혜를 가진 자의 특징 또는 열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이웃을 사랑하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대한, 성경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지혜가 아닙니다.

본문말씀의 27절과 28절을 보시면,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2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십계명을 요약하신 것이데 십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이웃사랑입니다. 이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성과 같습니다.

잠언서 1장 7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은 이웃을 향한 사랑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를 소유한 자이고 반면에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지혜를 소유한 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본문말씀의 26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권면이 나오는데 그 권면 다름에 바로 이웃에게 선을 베풀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누가 하나님을 정말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지를 알 수 있는가? 바로 그 사람의 이웃에 대한 태도에서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웃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의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래서 요한 1서 4장 20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고 말한 겁니다.

본문말씀의 27절과 28절에서 우리가 다른 이를 사랑하고 도와줘야 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혜를 소유해서 만 아니라 사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내가 다른 이를 도와주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대로 다른 이의 필요를 채워 줄 능력이 있음에도 그 일을 미루는 사람은 하나님께 빨리 도와 달라고 할 수 가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힘을 다해 선을 베풀고 신속하게 돕는 것이 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라고 합니다.

이제 본문말씀의 29절부터 보시면 “내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68장 5절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약한 자를 지켜 주시고 억울한 자를 신원해 주시는 분이시란 겁니다.

그래서 만약 다른 이들을,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인간은 죄악의 본성으로 인해 까닭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자기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고 상처를 줍니다. 이웃이 평안히 살면 괜히 해하려고 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한 자들을 거칠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자들은 어리석은 자이며 반드신 그 미련한 짓에 대한 대가가 따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이웃에게 원한을 산다면 절대로 평안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정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그런 횡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졌을 때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다른 이에게, 이웃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32절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업이든, 교회이든 간에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남에게 해를 가해선 안 되고, 내 가정이 잘되기 위해서 남의 가정에 해를 가해서도 안 되고, 내 사업이나, 내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남의 사업과 남의 교회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심판주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헤아리시는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는 자에겐 자비를 베푸시고, 해하기를 꾀하는 자에겐 징계를 내리신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1절부터 보시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따라야 하는 지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를 나열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지혜를 따르는 삶,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있다고 합니다.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은혜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영광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럼 31절부터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따르는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32절처럼 세상 방식대로 사는 사람, 죄 된 본성대로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본받지 않습니다. 또한 33절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도덕적인 생활방식을 따릅니다.

그리고 34절 말씀처럼 교만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지혜에 순종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계명과 지혜를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이웃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유익을 끼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이 아닌 기뻐하시는 일 행하기를 힘쓰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선한 목자 교우 여러분! 본문말씀의 마지막 구절인 35절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자가 되어 영광을 기업으로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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