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1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요한복음 4장 43절에서 54절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느니라”

유대인들이 무시하고 심한 차별을 두는 사마리아에서 우물가의 여인을 전도 및 구원해 주신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신 주님께서 본문의 44절에서,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갈릴리 지방에서는, 작은 촌마을 나사렛에서는 높임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자라나신 마을의 주민들이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배경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배경, 목수 요셉의 아들, 자기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예수님에 대한 편견이 너무 강해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자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고 다른 곳에서 많은 기적들과 표적들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편견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외모에 대한 편견, 소문에 대한 편견, 누가 무슨 말을 한 것에 대한 편견, 내가 주관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편견…, 항상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편견을 넘어서십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도 편견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믿음과 오직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해야지 편견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개 중에 가장 무서운 개는, 경찰견도 아니고, 투견도 아니고 바로 편견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46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전에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곳 바로 가나 마을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왕의 신하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병이 들은 것입니다. 아마도 죽음에 이르는 위독한 병이었나 봅니다. 본문의 47절 말씀을 보니 그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아버지가 전에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간청합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뜸 그 아버지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아왔고, 어떤 믿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왕의 신하가, 그 죽어가는 아들의 아버지가 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나아 온 한 가지 이유는 전에 예수님이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기적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오로지 기적을 본 까닭으로 나를 믿느냐?” 그 말씀의 뜻은 반대로 말해서, “그럼 너는 기적을 보지 못했으면 나를 믿지 못했을 것이 아니냐?”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도, “너는 오직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책망 및 교훈하신 것입니다. 왜냐면 여러분 믿음의 원칙은 믿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여러분! 믿으면 보입니다. 앞이 캄캄해도, 빛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빛줄기가 비쳐옵니다. 답이 없어 보여도 모든 것의 답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답이 보입니다. 길이 없어도 길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길이 보입니다.

이제 본문의 49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의 “너는 나의 기적을 본고로만 나를 믿느냐”라는 책망을 들은 왕의 신하가,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라고 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의 47절 말씀에선 그 왕의 신하가 그저, “내 아들을 고쳐 주소서”라고 만 청했는데 여기서는,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기서 “주여”라고 한 것은 헬라어 원어로 “큐리에”입니다. 이 말씀은 뜻은 주관자입니다. 주인입니다. 그 아들의 아버지는 왕의 신하입니다. 그런데 그 왕을 모시는 신하가 자기의 왕보다 더 높은 명칭인 “주”라고 부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큐리에는 만물의 주관자입니다. 주인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매일같이 고백하시는 “주” 기도할 때마다 “주여!”라고 고백할 때 그 “주”는 만물의 주관자,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 삶의 주권자…, 그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자이신, 신랑이신, 예수님이 주가 되십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런데 이 아버지의 간청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죽으면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내려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병고침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만 오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가 보는 가능성 안에서만 움직이시는 분이십니까? 그분은 인간의 불가능성을 넘어서시는 주님이십니다. 설사 아들이 죽었다해도 주님은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도 가만히 보면요 항상 내가 보는 가능성 안에서의 믿음입니다. 내 계산 안에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보이면 “믿쓥니다!”라고 기도하고 가능성이 안 보이면, “아이고! 이제 끝났다!”라고 말합니다. 전에 어느 성도님의 비즈니스 개업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인 분들이 다 아멘을 외치고 돌아가는 길에 함께 심방한 성도님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래도 로케이션이 아니야!”라고 우려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했는데 자기가 보는 가능성이, 계산이 믿음을 앞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49절에서,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은 믿지만 그래도 자기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야지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자기의 계산과 자기가 내다보는 가능성 안에 있는 아버지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하시니…, 그때 이 아버지가 또 깨우침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아 그럼 예수님은 주님이시니까 말씀만 하시면 되는 것인가? 내 생각대로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이 말씀만 하시면 되는 건가? 그리고 그 아버지가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병든 아들이 있는 곳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직 아들이 고침 받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만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말씀 앞에 나의 경험, 나의 계산, 나의 가능성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버지가 아들이 있는 곳에 내려가는 길이 자기 집의 종들이 오다가 만났고 자기 아들의 병이 다 낫고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언제 낫기를 시작했는냐?라고 물으니까 정확하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였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믿으시기 바랍니다. 염려하지 말라, 내게 맡겨라, 두려워 하지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의 53절 말씀을 보니까 그 일로 인해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린 것은, 그 고난은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한 식구가 병으로 죽음을 당했을 때도 그 고난을 통해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은 축복입니다. 현재 여러분에게 처한 고난, 힘든 일, 시련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받아드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