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5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마태복음 15장 21절에서 28절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오늘 본문 말씀에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한 여자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여러분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의 21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라고 말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당시 시리아 땅의 도시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지방을 지나 북서쪽에 위치한 이방 나라의 도시입니다. 예수님께선 공생애 3년 동안 딱 한 번 이방 나라에 들어 가셨는데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두로와 시돈이란 도시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그 바쁘신 공생애 와중에 왜 그 먼 이방 나라에 들어가셨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선 유대 땅 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보여주시려고 친히 두로와 시돈 땅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 전체에 있어 구속사의 그림을 보여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제 그 두로와 시돈이란 이방 땅에서 한 여인을 만나주십니다. 물론 그 곳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만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선 유독 한 여인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한 개인 개인에게 찾아오십니다. 구원은 한 개인의 구원이지 도매 급으로, 무더기로, 여러 사람들을 한꺼번에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선 그 한 가나안 여자를 찾아가신 겁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주신 겁니다. 여러분의 구원받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택하여주셨고, 여러분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셨고,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주님께선 여러분 한 사람을 구속하셨고, 여러분 한 사람을 지명해서 불러주셨고, 여러분 한 사람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구원받았습니다. 본문의 22절에서 그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본문의 22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한 가나안 여자를 찾아오셨고 그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소리 질러 말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우리는 여기서 이 가나안 여자의 놀라운,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을 가리켜,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어요!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어요! 이 “주”란 말은 영어론 “Lord” 인데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사용되는 명칭입니다. “주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했어요! 구약에서 인류의 메시야, 구원자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여자는 바로 예수가 그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구원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 땅에 살고 있었던 이방인 여자가 어떻게 그런 믿음을 고백할 수가 있습니까? 바로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구원자로,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100%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로, 가나안 여자는 주님 주신 믿음으로 모든 불리한 조건과 환경을 극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가나안 여자가 살 던 곳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시리아 땅의 도시입니다. 이 두로 도시는 이스라엘과 아주 사이가 안 좋은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을 이방인의 땅, 어둠의 땅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부르는 최대의 모욕적인 말은, “개” “Dog”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처럼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들을 섬기고, 율법도 없고…, 그러니까 자기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인간이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 가나안 여자는 그런 이방인인 동시에 말 그대로 여자였습니다. 지금이야 여자가 First이지만, 대세이지만 그 당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구 조사 할 때도 여자는 포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매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 여자의 가장 불리한 환경은 자기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모든 불리한 조건과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오늘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시킨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여러분을 존귀하게 세워줍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불리한 조건이나, 환경이나, 배경도 나를 좌절시키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열등감이나, 좌절감이나, 우울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왜요! 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존귀하고 보배롭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인생의 불리한 조건과 환경은, 열등감을 가질 수 있는 조건들은 절대로 신앙의 불리한 조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리한 조건들이 하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의지하기 때문에 신앙의 빛을 더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나안 여자에게 세상 적인 불리한 조건과 환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필요로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본문 말씀이 기록이 되었겠습니까?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생의 온갖 불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살아간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열 살 때 양친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형은 동생 때문에 먹는 입이 한 개 더 늘어나 언제나 동생을 불만스러워했으니…, 그의 성장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행은 그에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아내는 결혼 후 13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재혼을 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여러 명이 유아기 때 사망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중 하나는 20대가 되어서 죽고, 다른 하나는 정신박약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중풍으로 인하여 몸이 마비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불리한 조건의 삶을 살았지만 자기 생애의 사명으로 확신한 음악에 항상 몰두했습니다. 그는 작곡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며 확고한 감사에 넘치는 천둥과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진실로 위대한 음악이었습니다. 이 비참한 일생을 산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와중에도 그토록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의 음악을 작곡한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의 이름은 바로 요한 세바스치안 바흐입니다.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교회음악의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바흐는 그 불리한 조건들 때문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더 신앙의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가나안 여자는 많은 불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 주신 믿음으로 그것들을 극복하고 주님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 가나안 여자에게서 깨달아야 할 믿음은 모욕적인 거절을 극복한 믿음입니다.

본문의 25절 말씀에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절하고 자기 딸을 도와달라고 간구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정말 “예수님 맞아?”라고 할 정도입니다. 26절 말씀을 보시면,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하지 아니하니라!” 지금 예수님, 어떤 대답을 하신 거예요!? “내가 내 자녀의 떡을 어찌 너 같은 개들에게 던질 수 있겠느냐?”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그런 모욕적인 거절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럼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 여자에게 왜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하셨을까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보고 예수님도 인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라고 흥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선 그 여인이 어떻게 반응하나를 테스트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예수님이 구태여 그 여인이 살고 있는…, 한 번도 안 가보신 그 먼 이방 땅까지 찾아가셨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26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떡을 하나 달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내가 자녀의 떡을 당신 같은 개들에게 던질 수 있겠어!”라고 거절한다면 우리의 기분이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이성을 잃거나 돌아버릴 것입니다. 자존심이 최악으로 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선 자존심이 상하는 매순간마다 그 자존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자존심을 싫어하십니다. 왜냐면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 받고 주의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녀가 되었는데 그런 우리가 내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것은 바로 나는 예수님보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나의 의, 나의 공로, 나의 자랑, 나의 교만 등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존심 때문에 은혜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라도 그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마 오늘 내가 무너뜨려야 할 최고의 여리고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자존심일 겁니다. 자존심이 발동하기 시작하면요? 마음속에 미움이 생깁니다. 교만이 생깁니다. 이기심이 생깁니다. 예수님도 내 알량한 자존심에 가려집니다. 그럼 이러한 마음의 상태에선 주님 앞에서 은혜 받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마귀가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말씀에서 이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테스트에 합격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의 그런 모욕적인 거절을 듣고도 이
여인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자…, 이 여인의 반응을 들어보세요! 27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만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참으로 놀라운 반응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를 개로 인정하고 자녀에게 떡을 주신 다음 그 남은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이러한 믿음을 보신 주님께서 감탄을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아마도 예수님께선 이 가나안 여자의 큰 문제가 그녀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자존심이었음을 아셨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먼저 그녀의 자존심을 다루시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가나안 여자는 주님 주신 믿음으로 자존심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이 가나안 여자는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기도로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23절을 보시면 가나안 여자가 “주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예수에 대한 바른 믿음의 고백으로 자기의 딸을 귀신에게서 구원해 달라고 소리를 높여 간구 했을 때,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본문을 보시면 그 가나안 여자가 계속해서 예수님께 소리 질러 간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여인의 끈질긴 부르짖음에 얼마나 성가셨으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저 여자가 저렇게 소리질러대는데 어서 다른 데로 보내버리죠!”라고 부탁했겠습니까? 자기는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선 한 말씀도 안 하고 계셨을 때 완전히 거절당하는 느낌이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이 여인이 처음에 몇 번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포기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 말씀을 보시면 왜 예수님께선 가나안 여자의 간구에 침묵으로 일관 하셨을까요? 이에 대해 저는 신학자 카르의 말에 동의합니다. “예수님께선 그 여인이 가진 작은 믿음의 씨가 자라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침묵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이요, 사랑이요, 우리에 대한 기대요, 기다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참으로 귀한 것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구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마다 항상 강조하신 것이 바로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럼 종종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선 여러분의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대답 없는 암담한 상황에 부딪칠 지라도 도무지 물러서지 않는 “불퇴의 신앙”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지속적 입니다. 한두 번 기도해서 응답이 오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 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흥정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침묵의 상황 속에서도 계속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믿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를 싫어하는 마귀는 우리를 지속적인 기도에서 끌어내리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기도를 포기하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수만 가지 이유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은 다 포기할 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은, 기도만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요? 주님이 여러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주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은혜를 사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시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이르되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기서 이 여인이 얼마나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 했는 지를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떡덩어리는 아니더라도 주인이 떡을 먹고 떨어지는 부스러기…, 곧 은혜의 부스러기라고 얻으려고 한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간절히 사모한 가나안 여자에게 예수님께선 엄청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선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