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0일 새벽예배

본문 말씀: 시편 28장 6절에서 9절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감사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이유를 묵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9절).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성경 안에 “구원”이라는 말이 무려 530번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 구원에 관련 된 내용이 성경 전체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와 열심히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구약과 신약이 있습니다. 구약을 요약한다면 “만군의 하나님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사 9:7)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는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시고 준비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약을 요약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다 이루었다”입니다. 구약이 “구원을 이루리라”라는 하나님의 열심이라면 신약은 구원을 “다 이루었다”라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전도를 너무나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전도를 잘 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예수 없이 살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를 대신 십자가에 달아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만약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면 벌써 이 세상을 심판해 버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다니? 그분은 사랑하시는 것도 나 한 사람밖에는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날 사랑하신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지라도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셨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열심에 오늘 하루도 진심으로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산업에 복을 주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가리켜서 여러 가지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양과 백성과 성도 등등이 있습니다. 본문의 9절에서는 우리는 “산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상속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신분과, 성품과, 재산 등등을 상속받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발견되는 사실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상속받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업 되신 여러분에게 날마다 풍성한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가 능히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의 산업이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본문 말씀을 쓰면서 시편 23편을 묵상했을지 모릅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끝까지 책임져 줍니다. 끝까지 돌봐줍니다. 심지어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립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한 것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돌봐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본문의 9절 말씀을 보니까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Carry them forever” “영원토록 드십소서”라고 말했는데 이 “드십소서”라는 말은 “안고 가다”, “들고 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원토록 안고, 들고 가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번쯤은 목자가 양을 두 손으로 자기의 어깨에 메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선한목자로서 우리를 안고 오셨고 또 영원토록 안고 가실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서 모세가 지나간 40년의 광야 생활을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우리 모두는 우리의 목자가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어깨와 가슴에 안겨진 자녀로서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부족함이 없는 삶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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